“야구에 대한 열정은 진심이고, 우승하려고 야구단을 샀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지난해 초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야구단을 인수한 뒤 한 말이다. 정 부회장은 2년 만에 이를 현실로 만들었다. KBO 리그 최초 ‘와이어 투 와이어(개막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1위를 유지하는 것)’ 우승, 정규리그·한국시리즈 통합 우승, 홈경기 관중 수 1위 등 2년 만에 KBO 역사를 바꾼 ‘정용진 매직’은 어떻게 작동했을까. 2군 육성선수 이름까지 외워SSG 랜더스는 8일 인천 랜더스필드에 열린 ‘2022 신한은행 SOL KBO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키움 히어로즈를 4-3으로 눌렀다. 시리즈 전적 4승2패로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SSG 랜더스가 창단 2년 만에 KBO 리그의 역사를 바꾼 성과를 거둔 배경에는 정 부회장의 숨은 노력이 있다. 정 부회장은 올해 SSG 랜더스 홈구장인 랜더스필드를 40번 넘게 찾았다. 홈구장에서 열린 72경기 중 절반 이상을 직관한 셈이다.
관람에만 열을 올린 게 아니다. 정 부회장은 1군 선수는 물론 2군 육성선수까지 SSG 랜더스 소속 선수들의 얼굴과 이름을 모두 외웠다고 한다. 선수들에게 명함과 사원증을 만들어주고, 선수들을 초청해 직접 요리해 대접하기도 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정 부회장은 이마트에서도 실무 팀장들까지 얼굴과 이름을 모두 외우고, 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전화해 물어보는 성격”이라며 “이마트에서 하던 ‘스킨십 경영’을 SSG 랜더스에도 그대로 적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무한 믿음’으로 팀워크 끌어올려정 부회장은 믿음으로 선수들의 팀워크를 끌어올리기도 했다. 정 부회장은 한국시리즈 5차전을 앞두고 김원형 감독과의 재계약을 확정했다. 한국시리즈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 감독 재계약을 발표하는 건 이례적이다. 올해로 2년 계약 기간이 끝나는 김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고, 불필요한 잡음이 흘러나오는 걸 막기 위한 정 부회장의 용단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정 부회장은 메이저리그에서 복귀하는 추신수를 영입할 때도 KBO 리그 역대 최고 연봉인 27억원을 쥐여주며 믿음을 줬다. 야구단 통해 유통업 영역 확장정 부회장은 SSG 랜더스를 넘어 KBO 리그에도 큰 동력을 부여했다. 특히 열기가 식어가던 야구팬들에게 새로운 경쟁 구도를 만드는 등 야구에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첨가했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4월 “과거 키움이 넥센일 때 야구단을 인수하고 싶었는데, 나를 무시하며 안 팔았다”며 “키움은 발라버리고 싶다”고 말해 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통합 우승이라는 첫 번째 목표를 이룬 정 부회장은 이제 야구단을 인수한 진짜 목표를 좇을 전망이다. 본업인 유통과 야구의 연결이다.
정 부회장은 야구단을 인수한 이유로 ‘유통업의 확장’을 꼽았다.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 SSG닷컴 등의 연결을 통해 ‘신세계 유니버스’를 만들겠다는 정 부회장의 목표에 야구단이 마지막 단추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야구단이 정 부회장이 생각하는 유통의 핵심가치인 소비자의 시간을 빼앗는 역할도 맡게 될 전망이다. 정 부회장은 평소 “이마트의 경쟁자는 다른 대형마트가 아니라 놀이공원”이라고 강조해왔다.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것보다 시간을 빼앗는 걸 유통의 핵심으로 봤다. 신세계 관계자는 “2027년 인천 청라동에 SSG 랜더스의 새 홈구장으로 쓸 돔구장을 건설하고, 그 옆에 복합쇼핑몰 ‘스타필드 청라’도 지을 계획”이라며 “야구를 통한 신세계의 유통시장 정복 계획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