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팜테코는 지난 1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심가에 있는 오페라극장 ‘알테 오퍼’의 일부 공간을 통째로 빌렸다. 글로벌 제약·바이오산업 콘퍼런스인 ‘CPHI’ 참석차 프랑크푸르트를 찾은 고객사에 최고경영자(CEO) 교체 소식을 먼저 알리기 위해서였다. SK팜테코는 새 CEO 선임 이사회 일정을 CPHI 개최 시점에 맞췄다. 이동훈 SK㈜ 바이오투자센터장은 “제약·바이오 사업의 생명은 신뢰”라며 “리더십 변화를 고객사에 일방 통보하면 신뢰가 깨질 수 있다”고 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새로운 시도를 했다. 행사가 열린 ‘메세 프랑크푸르트’에 별도 공간을 얻었다. 고객사와 밀접 소통하기 위해서였다. 제임스 박 삼성바이오로직스 글로벌영업센터장은 “영업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건 글로벌 제약사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라고 했다. 의약품이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만큼 믿고 맡길 만한 실력을 갖췄느냐를 가장 우선적으로 따지기 때문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위탁생산 거래처를 쉽게 바꾸려 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제약·바이오 시장에서 한국은 여전히 변방국 취급을 받는다. 신약 연구개발(R&D) 중심지는 미국이다. 유럽에도 로슈, 노바티스, 사노피 같은 유수의 제약사가 즐비하다. 세계 최대 제약·바이오 콘퍼런스인 CPHI가 프랑크푸르트, 밀라노, 바르셀로나 등 유럽 도시를 돌며 열리는 배경이다. 한 참석자는 “제약·바이오산업은 철저하게 일부 선진국이 주도하는 시장”이라고 했다. 이 틈바구니를 파고드는 것이 ‘K바이오’의 과제였다.
전통 강자들의 텃밭에서 열린 CPHI에서 ‘K바이오’는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강자 대접을 받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의약품 CDMO의 세계적 강자인 스위스 론자와 나란히 전시 부스를 차렸다.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방증이다. 론자도 “삼성은 우리의 경쟁자”라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참석자들은 “1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라고 했다.
전략도 세련돼졌다. SK그룹은 론자 출신인 독일인을 SK팜테코 신임 CEO에 앉혔다. ‘SK맨’이 아니라 외부 전문가를 기용한 건 제약·바이오산업의 성공 비결은 오랜 기간 축적된 신뢰라는 점을 잘 알아서다. 롯데바이오로직스도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 출신을 미국 법인장으로 영입했다. ‘K바이오’가 초격차 기술력과 신뢰를 바탕으로 반도체, 자동차에 버금가는 국가대표 산업으로 성장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