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산업이 중심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대만 폭스콘과 손잡고 전기차 생산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립 과학연구기관도 서울대에 방문해 배터리 관련 교육프로그램 신설과 공동연구도 제안했다. 2040년께부터 글로벌 석유 수요가 감소한다는 전망(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이 잇따르자, 성장 산업인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에 진출해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겠다는 행보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인 퍼블릭인베스트먼트펀드(PIF)는 3일(현지시간) 폭스콘과 합작회사 시어(Ceer)를 설립하고 전기 세단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제조해 2025년 출시하겠다고 발표했다. BMW를 통해 섀시(뼈대) 등 부품 관련 기술을 도입하고, 폭스콘이 차량 아키텍처를 개발하는 방식이다. PIF는 인포테인먼트, 커넥티드(연결성), 자율주행 기술 등도 제품에 적용하겠다는 계획이다.
폭스콘은 지난달 대만에서 전기차 모델 B와 전기 픽업트럭 모델 V를 공개하는 등 전기차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애플이 2년 전 ‘애플카’ 위탁생산을 맡길 때만 해도 성공 여부가 불확실했지만, 빠른 시간 내 실제 차량을 선보이며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석유 부자’ 사우디의 행보에 자동차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 그동안 ‘오일 머니’로 자금을 쓸어 담은 PIF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어 대대적인 투자가 예상된다. PIF의 운용 규모는 6200억달러(약 900조원)에 달한다.
지난달엔 사우디의 과학·기술 정책을 총괄하는 국립기관 KACST(킹압둘아지즈 과학&테크놀로지를 위한 도시) 총장단이 서울대 공과대학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들은 현대차와 서울대가 공동 건립 중인 배터리 연구개발(R&D) 센터를 방문했고, 서울대에 에너지 분야 관련 공동연구도 제안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사우디는 수년간 석유 중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동차 산업을 키우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PIF가 자동차 기업에 투자해 이를 바탕으로 관련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전략으로 바꾼 것이다.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향후 10년간 글로벌 및 현지 투자를 유인하는 새 산업과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라며 “일자리를 창출하고 사우디의 국내총생산(GDP)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PIF는 시어 브랜드가 2034년까지 GDP에 80억달러를 기여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