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에 8분음표로 표시돼 있어도 스스로 곡을 해석하면서 때로는 9분음표처럼 빠르게, 때로는 7분음표처럼 느리게 연주해 봐요.”
3일 서울 서초동 스타인웨이 갤러리 내 스타인웨이홀. 타마스 바르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빈필) 첼로 수석은 라흐마니노프의 첼로 소나타를 연주한 박진우 씨(서울대 음대 1학년)에게 “컴퓨터처럼 연주하지 말고 유연해져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세계 최정상 관현악단 빈필의 베테랑 연주자들이 ‘K클래식’ 꿈나무들과 만났다. 3일과 4일 한·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한 빈필 내한 공연을 위해 한국을 찾은 알베나 다나일로바 악장과 바르가 수석, 디트마르 퀴블뵈크 트롬본 수석이 현대차 정몽구 재단에서 후원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마스터클래스를 연 것. 이들은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가며 빈필에서 쌓아온 연주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전했다. 학생들은 세계적인 연주자들로부터 조언을 하나라도 더 듣기 위해 통역도 마다하는 등 마스터클래스 현장은 배움의 열기로 가득 찼다. “춤추는 발걸음 생각해 강박을 줘야”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한 빈필 단원들은 오케스트라 연주뿐 아니라 솔리스트와 실내악 연주자로도 활약 중인 스타 연주자들이다. ‘불가리아 국민 바이올리니스트’ 다나일로바는 보수적인 빈필의 전통을 깨고 2011년 첫 여성 악장이 되면서 음악계를 놀라게 했다. 바르가와 퀴블뵈크도 각각 20년 넘게 빈필의 첼로와 트롬본 수석을 맡아왔다.
이들은 이날 각각 클래식 유망주 두 명씩을 맡아 지도했다. 현대차 정몽구 재단은 후원 영재 중 서울대 음대,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원학교 등에 다니는 학생 총 6명을 선발했다.
다나일로바는 활을 제대로 움직이는 법, 고음을 내는 법 등 기본기부터 시작했다. 권하나 양(예원학교 3학년) 앞에서 직접 시연까지 하며 “활을 쓸 때 손목이 아니라 팔목 전체로 움직인다고 생각하라”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라’를 연주할 땐 활의 윗부분까지 더 넓게 써야 한다” 등의 조언을 쏟아냈다. ‘레가토(둘 이상의 음을 부드럽게 이어 연주하는 기법)’에서 실수를 반복한 김에셀 씨(서울대 3학년)에겐 “한 음을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이 음을 어떻게 끝내고 다음 음을 낼 건지 미리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쾨블뵈크는 남건 씨(한예종 2학년)에게 “낮은 음을 제대로 내면 고음은 알아서 따라온다”며 “힘으로 억지로 음정을 올리려고 하면 안 되고, 스키점프를 하는 것처럼 공기의 흐름을 타야 한다”고 조언했다. 악보에 적혀 있지 않은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곡을 분석하는 자신만의 노하우도 알려줬다. 헨델의 트롬본 협주곡을 연주한 박종빈 군(예원학교 3학년)에게 “헨델이 살던 시대에는 협주곡도 춤을 위한 음악이었다”며 “춤출 때의 발걸음을 생각해 강박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바르가는 슈만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한 조예원 씨(한예종 4학년)에게 “곡으로 먼저 노래를 만들어 부른다고 생각하면서 호흡을 끌고 가라”고 강조했다. “국내 클래식 꿈나무, 개성 길러야”이들은 마스터클래스에 참석한 학생들에게 공통적으로 “기본 실력은 충분하지만 보다 개성을 살려 연주하라”는 조언을 내놨다. 바르가는 “한국 클래식 연주자들의 수준이 매우 높아졌음을 느낀다”면서도 “기교적으로는 거의 완벽하지만, 기교만으로는 곡을 완전히 해석할 수 없고 청중을 감동시킬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곡 전체 구조와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해 나만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나일로바는 “유튜브 등을 통해 클래식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연주자 고유의 개성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스터클래스를 마친 이들은 공연장인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로 이동했다. 빈필은 이날 오스트리아 출신 마에스트로 프란츠 벨저-뫼스트의 지휘로 바그너의 ‘파르지팔’ 전주곡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죽음과 변용’,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 등을 연주했다. 빈필 연주자들은 본 공연에 앞서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연주하고 관객과 함께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위해 묵념했다. 4일에는 브람스의 ‘비극적 서곡’과 교향곡 3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을 들려준다.
신연수/김수현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