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공공기관에 정치권 인사가 쏟아져 내려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공공기관 낙하산을 원천 차단하겠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대선 공신을 공공기관 사장 또는 임원에 임명하는 사례가 계속되면서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정치권 인사들이 줄지어 내려오면서 공공기관 개혁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전직 의원들, 연봉 2억~3억원 기관장에한국지역난방공사는 정용기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을 차기 사장 후보자로 선정했다고 3일 공시했다. 지역난방공사는 오는 18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사장 선임 안건을 처리할 계획이다.
정 전 의원은 에너지 관련 경력이 없다. 그는 민주자유당 사무처 직원 출신으로 대전시 대덕구청장을 거쳐 19~2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국회의원으로 있을 때도 행정안전위원회와 국토교통위원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등의 상임위에서 일했다. 지난 대선 때는 윤석열 캠프 상임정무특보를 맡았다.
국회의원 보좌관, 국무총리비서실 정무수석 등을 지낸 황창화 전임 사장에 이어 연속으로 정치권 인사가 사장으로 결정되자 업계에서는 “회사 경쟁력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난방공사는 지난해까지 흑자를 내다 올 상반기 2204억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에 더해 경영진의 역량 부족이 적자 전환의 한 요인으로 거론된다. 지난해 기준 지역난방공사 사장의 연봉은 2억1780만원(성과급 등 포함)이다.
공공기관은 아니지만 국토교통부의 관리감독을 받는 전문건설공제조합 이사장에는 이은재 전 의원이 지난 1일 선임됐다. 전문건설공제조합은 전문건설 사업자의 보증 및 대출 등 금융상품을 제공하는 법정단체인데, 이 전 의원은 건설 및 금융 관련 경력이 없다.
이 전 의원은 건국대 정치행정학부 교수 출신으로 18대 및 2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국회의원 시절 맡은 상임위는 법제사법위원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행정안전위원회 등이다. 지난달 이 전 의원이 이사장 후보로 결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정치권과 관련 업계에서는 ‘낙하산 인사’라는 지적이 계속됐지만 후보는 바뀌지 않았다. 전문건설공제조합 이사장의 연봉은 3억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장이 아닌 임원도 마찬가지다. 한국수력원자력 상임감사에는 최익규 전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지역구 사무국장이 선임됐다. 이영애 전 한나라당 의원과 김쌍우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은 각각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상임감사로 자리 잡았다. 김응박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상임감사도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이다.앞으로도 낙하산 줄줄이 대기정치권 낙하산 인사는 계속될 전망이다. 한국가스공사 사장에는 최연혜 전 의원이 유력하다. 최 전 의원은 한국철도공사 사장을 지내는 등 공공기관장 경력이 있지만 에너지 분야와는 거리가 멀다. 특히 최 전 의원은 앞서 1차 공모 때 에너지 관련 이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면접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정부는 남은 후보 중 적임자가 없다며 사장 후보자를 재공모하라고 결정했다. 이후 최 전 의원은 다시 지원했고, 김준동 전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등과 함께 유력 후보로 꼽히고 있다.
한국도로공사 사장에는 함진규 전 의원이 유력하다는 게 중론이다. 이 밖에도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공공기관 사장 및 임원 자리를 두고 정치권 출신들이 서로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일부 기관장은 대통령실과 여당에서조차 ‘전문성이 너무 없어서 임명을 철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을 정도”라며 “그럼에도 ‘선거 공신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묻힌 적이 많다”고 전했다. 정부 관계자는 “일부 기관에는 전 정권에서 임명된 낙하산 출신이 임기 만료까지 버티고 있고, 다른 기관에는 새로운 낙하산이 내려오는 현실”이라며 “공공기관 개혁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이런 관행부터 깨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병욱/이지훈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