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부처에 물어보라"…역대급 참사에도 '책임 떠넘기기'

입력 2022-11-07 10:56
수정 2022-11-07 11:21

압사 사고가 발생한 지난달 29일 밤 이태원 현장에서 환자 이송이 지나치게 한 병원으로 쏠렸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부 당국은 몇 명의 환자가 어느 의료기관으로 이송됐는지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관련 부처 공무원은 상대편에 물어보라며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사고 발생 직후 다음 날 오전까지 순천향대학교 부속 서울병원으로 총 82명의 환자가 이송된 것으로 알려졌다. 순천향대 서울병원 응급실에서 임시 대기하다 사건 발생후 4시간가량 방치되고 임시 영안소로 옮겨진 사망자는 72명으로 확인됐다. 7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번 사고로 발생한 사상자는 총 353명으로 이 가운데 약 23%가 이곳으로 이송된 것이다. 사고 발생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오전 11시 중대본이 처음 발표한 사상자 규모는 233명으로 이 당시 기준으로는 35%에 달한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으로 12명, 서울대학교 병원과 한양대학교 병원에 각각 4명이 이송된 것과 대조적이다. 순천향대병원이 보유한 응급실 병상 수는 20개 남짓으로 파악됐다.

순천향대 서울병원에 사망자와 응급환자가 몰려들면서 병원 측이 소방에 '사망자 이송 중단'까지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 발생 직후 용산구보건소장의 현장 대응 활동 기록에는 오전 1시 30분 '순천향대학교병원 다수의 사망자 이송 인지' '용산구 신속대응반 2명 순천향대학교 병원으로 파견', 오전 2시 10분 '순천향대학교병원(장)으로부터 사망자 이송 중단 요청 받음' '임시 안치소 장소 수배'가 기재된 것으로 파악됐다.

순천향대병원으로 응급환자 이송이 집중된 것은 사고 현장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이어서다. 이곳 병원은 사고 현장과 직선거리 1㎞에 있다. 관련 규정인 ‘119구급대원 현장응급처치 표준지침’에는 심정지 환자를 “가장 가까운 지역 응급의료기관으로의 이송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돼있다.

보건복지부 측은 환자 쏠림 현상이 있었다는 지적에 “이송 당시 대다수의 피해자가 사망한 상태였다”는 해명했다. 그러나 이날 현재 이태원 참사로 발생한 부상자는 중상 33명, 경상 164명으로 이송이 늦어졌을 경우 자칫 이들의 생명까지 위태로울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박청웅 세종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심정지 환자의 ‘골든타임’은 4분 내외로, 구조대 도착 당시 희생자 다수는 이미 숨진 상황이었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생존한 분들도 있고, 이분들을 신속하고 적절하게 이동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대형 인명사고가 발생한 상황에선 심정지 등 위중한 환자는 최대한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하고, 외상을 입은 경우엔 비교적 거리가 먼 병원으로 이송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대형 인명 재난 발생 시 환자 이송 시스템에 구멍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관련 데이터를 정리한 부처는 없는 상황이다. 중대본이 속한 행안부 관계자는 의료기관별 환자 이송 데이터를 요구하자 “의료 관련 데이터이니 보건복지부에 문의하라”는 답을 내놨다. 반면 복지부는 “이번 참사와 관련된 발표는 전부 중대본을 통해 이뤄진다”고 밝혔다. 단 복지부 관계자는 “해당 데이터를 확인해보겠다”고 답하면서도 누구에게 확인할 것인지를 묻자 “그것도 확인해보겠다”고 응답했다. 사고 발생 구역을 관할한 용산소방서 측은 확인을 거부했다.

이번 참사가 전대미문의 사고라는 점에서 혹시 모를 비판을 피하기 위해 보신주의가 판친다는 지적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2일 각 부처에 사실관계를 언론에 정확히 전달하는 노력을 강화해달라고 주문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