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업지에서 도 넘은 수주경쟁으로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곳이 있다. 하필 '이태원 참사' 가 벌어진 곳과 가장 가까운 곳이다. 올해 서울 최대 재개발 사업으로 꼽히는 보광동 일대 '한남2구역' 의 시공사 선정 과정이 그렇다. 지난 2일 사전 투표 과정에서 신원확인이 안된 모 직원이 조합 사무실에 접근해 조합원 명부가 담긴 PC에 접근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조합이 발칵 뒤집힌 상태다.
3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전날 한남2구역 조합 사무실에서는 시공사 선정을 위한 사전투표가 진행됐다. 본 투표일(5일)에 참여할 수 없는 조합원들을 위한 부재자 투표 격이었다. 그런데 이날 오전 신원확인이 안 된 인부가 조합원 명부가 있는 컴퓨터에 접근해 전산 작업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한남2구역 시공사 선정은 롯데건설과 대우건설이 2파전으로 경쟁하고 있다.
조합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 직원의 정확한 신분은 아직 경찰 조사 중이지만 입찰 기업인 대우건설의 협력사 혹은 관계사 일용직 직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PC에는 조합원의 개인정보가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합원 6명이 투표할 때까지 전산 작업을 하다 조합에 발각됐다는 것이 롯데건설 측 주장이다. 이 때문에 오전 한때 투표는 중단됐다.
롯데건설 측은 "사전 투표는 롯데건설과 대우건설 양사 직원 1명씩만 배석해 참관하기로 협의된 사안이며 이 공간에서는 절대 시공사 직원이 조합원 개인정보가 담긴 조합 컴퓨터와 투표용지에 접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우건설 협력사 직원이 사전투표가 진행되는 투표현장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조합 상근이사가 조합원들에게 공지했다"며 "대우 협력업체 직원이 조합 사무실에 들어와 조합원 명부가 있는 컴퓨터에서 전산작업을 진행한 일은 조합에서도 경찰에 수사 의뢰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롯데건설은 이날 곧바로 용산경찰서에 대우건설 측을 건설산업기본법, 입찰방해죄, 업무방해죄 등 명목으로 고발했다. 롯데 측은 해당 사안에 대하 롯데 측은 관련된 모든 영상과 녹취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현장 녹취록을 완성하는대로 공개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대우건설은 해당 내용이 모두 허위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대우 측은 양일에 거쳐 세 차례나 입장문을 내고 롯데건설 측의 주장이 허위라고 밝혔다. 대우 측은 입장문을 통해 "해당 직원은 아르바이트생으로 몸이 불편한 어르신을 위해 투표를 돕는 요원으로 잠시 고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조합에서 조합 측 아르바이트 요원인 줄 잘못 알고 주변 정리 등을 지시했고 이를 수행하다 벌어진 헤프닝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대우건설은 "총회 3일 앞두고 명부를 빼돌린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며 "롯데가 무책임한 의혹제기를 중단하고 사업조건과 설계 만으로 조합원의 선택을 기다리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롯데는 지난달 29일 합동설명회 때 금지된 홍보행위인 대규모 인력 차량 동원을 하지 않았느냐"며 "사업지 인근 공인중개업소 상가에 옥외광고물을 불법 지원해 현금을 살포한 바 있다"고 반격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양 측 갈등이 지나치게 격화되면서 수주 후에도 승자와 패자 모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됐다"며 "요 근래 보기드문 과당경쟁"이라고 우려했다.
한남2구역은 서울 용산구 보광동 일대 11만5000㎡ 부지에 지하 6층∼지상 14층, 아파트 30개 동, 총 1537가구(임대 238가구 포함) 규모의 공동주택과 근린생활시설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조합은 5일 총회를 열고 시공사를 선정한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