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장에 10여 년의 노력 끝에 한국의 ‘호접란(胡蝶蘭)’을 수출했다. 중국 시장에선 한국 기업들의 ‘문제 해결사’ 역할을 맡아왔다. 단돈 300만원을 손에 쥐고 일본 시장에 뛰어들어 일본 각지에서 면세점과 관광버스 회사를 운영하는 거상(巨商)이 됐다. 오대양 육대주에서 한인 출신 기업인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딛고 상공, 무역, 금융 등의 분야에서 두드러진 족적을 남긴 한인 기업인이 적지 않다. 한국경제신문은 2일 고국을 방문한 주요 한인상공인 단체장 6명을 만나 글로벌 시장에서 한인 기업인의 위상을 되짚어 보고 국내 기업과의 협업 방안을 모색했다. 이들 재외동포 기업인들은 “한국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을 적극 돕겠다”고 이구동성으로 강조했다.
▷해외 각지에서 활동하는 한인 기업인의 위상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황병구 미주한인상공회의소총연합회장=“우리 단체는 미국 50개 주, 78개 지부에 5만여 명의 회원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짧게는 20년, 길게는 50년에 걸쳐 한 우물을 파 성공한 전문가들입니다. 과거에는 각자가 먹고사는 데 급급했다면, 지금은 한인들끼리 뭉쳐 교민과 한국 기업을 위한 다양한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최근 100년 역사의 미국 수출입협의회와 파트너십을 맺을 정도로 미국 시장에서 영향력도 갖춰 나가고 있습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국인에게 필요한 상품을 발굴하는 게 주된 임무인데, 만약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미국 진출을 원하면 이런 단체와 연결해줄 수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의 미국 내 위상도 대단합니다. 미국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30%도 안 되지만 삼성, 현대, SK 같은 기업은 모르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한인 기업이 해외 진출 초창기에 주로 겪는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최분도 베트남 중남부 한인상공인연합회 수석부회장=“가장 힘든 부분은 금융 협조를 받기 어려운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독립적으로 자금을 운용해야 하므로 작은 위기에도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사업 초기에 단돈 1만달러를 구할 데가 없어 폐업 직전까지 내몰렸던 경험이 있습니다.”
▷황 회장=“상품이 아무리 훌륭해도 한국 내에서 현지 바이어를 발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일단 해외 시장으로 나와야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 조사가 제대로 안 돼 있고, 현지 사정에도 어두운 채 덤볐다가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인 기업들이 국내 중소기업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고광희 유럽한인경제인단체총연합회장=“우리 단체는 유럽 20개국을 잇는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한국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잠자고 있는 우수한 중기 제품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추천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현지 광고와 마케팅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도우려 합니다. 우리는 30~40년씩 현지에서 생업에 파고든 베테랑입니다. 2024년께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유럽 20개국이 참가하는 중소기업 박람회를 열 계획인데, 한국 중소기업에 큰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장영식 세계한인무역협회장=“7년 전부터 해외 현지 시장 조사와 수출 대행 등을 지원하는 ‘글로벌 마케터’ 제도를 구축했습니다. 꾸준히 교육생을 배출해 세계적으로 400여 명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치찌개 레토르트 상품을 만들었는데 말레이시아에서 어떻게 통관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이슬람권 수출을 위해 할랄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성분 구성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매우 많습니다. 세계 곳곳에 나가 있는 글로벌 마케터들을 활용하면 이런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해외 진출을 노리는 중소기업을 위해 조언한다면요.
▷김점배 아프리카중동한인회총연합회장=“무엇보다 한인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어느 나라를 가든 한국 기업인 네트워크가 잘 마련돼 있습니다. 이런 단체를 통해 그 나라 상황을 파악하고, 사업을 연계하면 손해 볼 일이 거의 없으며 경비도 절약할 수 있습니다.”
▷최 수석부회장=“해외 사업은 사회 분위기, 문화, 정치 제도 등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후진국이라는 이유로 자기 말만 앞세우다간 실패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시진핑 3연임 등을 계기로 중국 시장에 대한 우려가 커졌습니다.
▷권순기 중국아주경제발전협의회장=“중국은 여전히 매력적인 시장입니다. 다만 한국 기업들은 전기차, 신재생에너지 등 미래 첨단 산업 분야의 높은 기술력으로 승부수를 띄우는 게 유리합니다. 중국은 고급 소비문화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중국에 진출한 ‘골프존’이 1년 만에 35개 도시에서 200여 개 지점을 낸 게 그런 변화에 잘 적응한 예입니다. 급속한 인구 고령화로 실버산업이 급성장하는 점도 주목하면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