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 통한 시너지·떡잎부터 달랐던 유니콘…CVC 베테랑이 꼽은 인생 투자

입력 2022-11-02 17:27
수정 2022-11-03 01:20

국내 대기업이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을 앞세워 스타트업 투자에 뛰어드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었다. 투자 대박으로 이어지거나 대기업과의 시너지를 내는 등의 성과 사례도 잇달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 주요 CVC 대표주자들이 꼽은 대표적인 성공 투자 사례는 어떤 게 있을까.

현대자동차의 스타트업 투자를 책임지는 신성우 CVC팀 상무는 대표적인 성공 투자 건으로 슈어소프트테크를 꼽았다. 슈어소프트는 안전 검증 소프트웨어 회사로 내년 상장을 앞두고 있다. 이 회사는 자동차나 에너지 설비 등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검증한다. 안전성과 직결되는 분야여서 고도의 기술력을 요구한다. 신 상무는 “현대차 연구소의 소개로 슈어소프트테크에 투자하게 됐다”며 “소프트웨어 안전성 검증 분야에서 기술력이 독보적”이라고 평가했다.

슈어소프트가 자체 개발한 ‘코드 스크롤’은 2010년 도요타 리콜 사태 이후 시장의 관심을 끌었고, 2012년 현대차로부터 15억원을 투자받았다. 올해 상반기 기준 현대차 지분율은 15.89%로 3대 주주다. 최근 소형모듈러 원전(SMR) 대표 기업인 뉴스케일에 슈어소프트 기술이 적용됐다.

롯데그룹 CVC인 롯데벤처스의 배준성 상무는 증강현실(AR) 글라스 제조기업 레티널을 가장 CVC다운 투자로 꼽았다. 레티널은 구글 글라스,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그램과 경쟁하는 국내 스타트업으로 이제 막 양산체제를 구축했다. 바늘구멍 사진기의 핀홀 효과에 착안해 AR 광학렌즈를 개발했다. 배 상무가 레티널 투자를 결정했을 때만 해도 롯데그룹 계열사와의 시너지를 예상한 것은 아니다. 롯데월드나 롯데택배 물류센터와의 협업을 염두에 둔 정도였다. 하지만 지난해 롯데그룹이 전사적으로 메타버스 사업에 나서면서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베어로보틱스도 롯데벤처스의 대표적인 성공 투자 사례다. 지금은 GS건설의 CVC인 엑스플로인베스트먼트의 이종훈 대표가 롯데벤처스 투자본부장을 지낼 당시 투자를 주도했다.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음식 서빙 로봇을 개발한 베어로보틱스는 롯데그룹의 식음료 매장에서 실증을 거쳐 솔루션 데이터를 쌓았다. 투자 당시 기업 가치는 400억원이었지만 지금은 차기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 수준으로 평가된다.

GS리테일에서 스타트업 투자를 담당하는 이성화 상무는 최고의 투자로 AI 스타트업 몰로코를 꼽았다. GS리테일은 2019년 몰로코에 72억원을 투자했다. 몰로코는 구글 엔지니어 출신인 안익진 대표가 2013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했다. AI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해 고객사가 온라인 광고로 수익을 내도록 돕는 애드테크 스타트업이다. 한국인이 미국에서 창업한 회사 중 첫 유니콘 기업 반열에 올랐다.

당시 GS리테일(옛 GS홈쇼핑)은 AI를 활용해 온라인몰 내 알고리즘을 고도화하는 중이었다. 종합 쇼핑몰 특성상 카테고리가 복잡하게 나뉘어 있었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해선 AI를 활용한 머신러닝 기술이 필수라고 판단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몰로코의 지원사격을 받은 GS리테일의 쇼핑몰 GS샵은 광고비 대비 매출액(ROAS)이 4000%까지 상승했다. 재무적 성과도 컸다. GS리테일이 투자한 이후 3년 만에 몰로코의 기업 가치는 20배 넘게 뛰었다.

GS리테일은 이 밖에 핏펫, 어바웃펫, 펫프렌즈, 바램시스템 등 다양한 펫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펫 산업을 새 먹거리로 낙점한 것이다.

허란/김종우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