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문제를 내고, 아이가 푸는 게 아닙니다. 아이가 문제를 내고, 부모가 풉니다. 문제를 내는 건 자기주도적으로 생각하는 연습이니까요.”
2일 개막한 ‘글로벌인재포럼 2022’에서 허명회 고려대 통계학과 명예교수는 아들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와 손자 허단 군의 ‘문제 내기 교육 방식’을 소개했다. 허명회 교수는 한국계 최초로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의 아버지다.
이날 허 교수와 박형주 아주대 수학과 석좌교수가 ‘창의적 인재 교육’을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허 교수의 손자가 삐뚤빼뚤하게 그린 동그라미 24개를 보고 청중은 웃음을 터트렸다. 초등 2학년 어린이가 고심해서 낸 문제는 동그라미가 몇 개인지 세보라는 것. 허 교수는 “아직 곱셈을 모르는 아이는 24개 원을 세는 데 한참 걸리는데, 부모는 ‘4 곱하기 6은 24’로 금세 센다”며 “아이가 학습지에서 공식을 외우도록 가르치지 않아도, 이 새롭고 아름다운 풀이법을 보고 아이는 자연스레 곱셈을 깨닫는다”고 설명했다.
두 교수는 협력하는 힘도 강조했다. 2017년 노벨 물리학상은 100년 전 아인슈타인이 이론적으로 예측했던 중력파를 관측한 연구진에 돌아갔는데, 1000명 넘는 연구자가 협력한 결과였다.박 교수는 “오늘날 학문은 대규모 협력으로 난제를 돌파하는 게 핵심”이라며 “대학 강의에서도 서로 다른 전공의 학생들이 협력하는 ‘조별과제’를 많이 시켜야 한다”고 했다. 이어 “서로 달리 기여하고도 팀으로 평가받아 불공정하다는 학생도 있지만, 당장 6개월짜리 수업에선 협력이 나에게 손해인 듯해도 5년 뒤를 생각하면 이득”이라고 강조했다.
허 교수도 “혼자보단 동료와 함께 생각해야 더 멀리, 깊이 갈 수 있다”고 공감했다. 지금 세대는 한 해에 80만여 명이 태어나 옆 사람을 제쳐야 생존하던 베이비붐 세대와 달리 사고해야 한다는 의미다. 또 협력을 위해선 남과 다른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팀에 기여하려면 너와 나의 역할, 능력이 달라야 한다”며 “남들을 똑같이 쫓아가기 위해 사교육을 받을 필요도 없다”고 했다.
이처럼 지식의 연결이 중요한 사회에서 “‘한 우물 파기’ 시대는 끝났다”는 게 박 교수의 생각이다. 호기심을 가지고 여러 분야에 기웃대는 사람이 창의적인 성과를 낸다는 의미다. 그는 수학자이면서도 영화상인 아카데미상을 두 번 수상한 론 페드키우 스탠퍼드대 컴퓨터학과 교수를 예로 들었다. 유체역학 방정식을 이용해 ‘캐리비안의 해적’ 등 영화에서 실감 나는 특수효과를 구현했다. 박 교수는 “수학적으로는 새로운 발견을 한 게 아니지만, 아무도 접목하지 못한 영화와 수학을 연결한 것”이라며 “한 분야만 파는 사람에겐 찾아오지 않는 행운”이라고 말했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
이현주 기자 wondering_hj@hankyung.com
서원형 기자 westcircle@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