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을 비롯해 세계 산업계가 ‘탄소중립’에 주목하고 있다. 2015년 유엔 기후변화 회의에서 채택된 파리협정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의 온도를 1.5도에서 2도 미만 상승으로 제한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이는 저탄소를 넘어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을 가속하는 계기가 됐다.
각국 정부의 탄소중립 선언에 발맞춰 글로벌 철강사도 탄소중립 기술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아르셀로미탈은 다양한 저탄소 기술개발을 위해 494억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일본제철은 2013년 대비 2030년까지 30% 탄소감축,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수소환원제철 및 CCUS(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 등을 개발 중이다. 포스코도 ‘HyREX 기술’을 중심으로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철강업계의 탄소중립 기술2019년 기준 세계 조강 생산량은 18억7000t이다. 이 중 72%는 고로, 나머지 28%는 전기로에 의해 생산됐다. 향후에는 상대적으로 이산화탄소 발생이 적은 전기로 기술이 부각될 전망이다. 글로벌 철강사들이 실천하려는 탄소중립 기술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현재의 제철 기술을 기반으로 한 기술이다. 이산화탄소를 포집·저장·활용하는 CCUS 기술을 활용하거나, 그린수소 및 그린 전력으로 철강 제품을 생산해 이산화탄소를 최대한 줄이는 식이다. 또 다른 하나는 신공정 기술개발이다. 탄소중립의 궁극적 대안이 될 수 있는 수소환원제철 상용화가 목표다.
철강업계의 가장 현실적인 탄소저감 기술은 ‘철스크랩 기반의 전기로 공법’이다. 수소환원제철 상용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시행착오가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고로는 세계 평균 약 13년, DRI(직접환원철) 설비는 14년 가동 중이라고 한다. 철강산업의 투자 주기 및 평균 가동 기간을 고려하면 현재 가동 중인 철강생산 설비의 상당수가 2030년대 중반까지 가동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2030년 이후는 수소환원제철 등 신공정 기술이 철강산업의 주력 기술로 부상할 전망이다. 자연 상태의 철은 적철광, 자철광과 같이 산소와 결합한 산화물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제철 공정에서 환원 공정이 필수적이다. 지금까지의 환원반응은 석탄, 천연가스를 활용했기 때문에 이산화탄소가 필수적으로 발생했다. 수소환원제철은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해 이산화탄소 발생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포스코는 2030년까지 독자적인 수소환원제철법인 ‘HyREX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독자기술인 FINEX의 유동환원로 기술을 발전시켜 수소환원제철법으로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HyREX와 수소환원제철수소환원제철은 화석연료 대신 수소를 사용해 철을 생산하는 혁신적인 기술이다. 석탄이나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는 철광석과 화학반응하면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만, 수소는 물이 발생하기 때문에 탄소배출이 없다. HyREX(Hydrogen Reduction)는 포스코가 보유하고 있는 파이넥스(FINEX) 유동환원로 기술을 기반으로 가루 상태의 철광석과 수소를 사용해 쇳물을 제조하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이다. 석탄, 천연가스, 수소의 공통점은 철광석(Fe2O3)에 붙어 있는 산소(O2)를 떼어내는 환원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수소환원제철의 핵심은 환원반응이 일어나는 ‘환원로’에 있다. 전통적인 제철 공정에서 이 환원로의 역할은 용광로(고로)가 맡는다. 고로 조업은 철광석과 석탄을 사용하기 적합한 형태로 가공해(소결·코크스 공정) 고로에 넣고 뜨거운 공기를 불어 넣으면서 이뤄진다. 뜨거운 공기는 석탄을 연소시키고, 이때 발생하는 일산화탄소 가스는 철광석에서 산소를 떼어내는 환원반응을 일으킨다. 고로 내부에 발생하는 1500도 이상의 열은 철광석을 녹이는 용융반응을 일으키며 쇳물을 만든다. 철광석에서 산소를 떼어내는 환원반응과 환원된 고체 철(Fe)을 녹이는 용융반응이 석탄에 의해 고로 내에서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다.
수소환원제철 공정에선 환원반응과 용융반응이 고로가 아닌 ‘환원로’와 ‘전기로’라는 두 가지 설비에서 각각 분리돼 발생한다. 먼저 환원로에서 철광석을 고온으로 가열된 수소와 접속해 고체 철(Fe)을 제조한다. 이런 방식으로 제조된 철을 직접환원철(DRI)이라고 부른다. 이 DRI를 전기로에 넣어서 녹이면 쇳물이 생산되는 방식이다.포스코, 지난해 'HyREX 수소환원제철 기술' 선보여
'데모 플랜트' 세워 상업화 검증
수소환원제철의 핵심이 환원로인 이유는 아직 전 세계적으로 100% 수소만 사용해 DRI(직접환원철)를 생산하는 환원로가 상용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기술로는 석탄 또는 천연가스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소를 일부 활용해 DRI를 생산하는 것만 가능하다.
포스코의 FINEX 기술도 석탄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소가 철광석 환원에 약 25% 사용되고 있다. 포스코는 FINEX에 적용된 유동환원로 기술을 기반으로, 수소를 100% 사용하는 HyREX 기술 개발을 정부를 포함한 국내 철강사들과 함께 추진 준비 중이다. 반면 유럽·미국·중국 등 해외 철강사들은 천연가스를 일산화탄소와 수소 가스로 개질해 사용하는 샤프트환원로(Shaft Furnace)를 기반으로 기술 개발을 추진 중이다.
포스코는 지난해 10월 세계 최초로 수소환원제철 국제포럼인 ‘HyIS 2021’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HyREX 기술을 글로벌 철강사들에 처음으로 선보였다. HyREX에 적용되는 유동환원로는 해외 철강사들의 샤프트환원로 방식과는 철광석 종류부터 수소와의 접촉방식까지 완전히 차별화된 수소환원제철 기술이다. 포스코는 2030년까지 HyREX 기술을 상용화함으로써 탄소중립으로 전환되는 미래 철강기술 리더십을 강화하고 그린철강 시대를 주도해나갈 계획이다.
포스코가 샤프트환원로가 아닌 유동환원로 기술을 적용한 HyREX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개발하는 건 친환경성과 경제성 때문이다. 원료 측면에서 HyREX는 철광석 분광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원료 확보가 용이해 생산원가가 낮다. 기술 측면에서 유동환원로는 샤프트환원로 대비 환원로의 온도 제어에 유리하다. 환원로의 열이 부족해지면 철광석의 환원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수소환원제철에서 환원로의 온도 제어는 매우 중요하다.
포스코는 정부 및 국내 철강사와 협업해 2028년까지 포항제철소에 연산 100만t 규모의 데모 플랜트를 건설할 예정이다. 이후 2030년까지 FINEX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HyREX 기술의 상업화 가능성을 점검한다.
포스코는 1992년 FINEX 기술 개발을 시작해 2007년 상용화 이후 지금까지 파이넥스 공장에서 누계 3400만t의 쇳물을 성공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통상 기술 개발은 Lab(콘셉트 검증)-Pilot(연속공정 검증)-Demo(상용화 검증) 단계를 거쳐 상용화 확대로 이어진다. 포스코는 FINEX 공정 개발 과정 중 확보한 기술과 경험을 활용해 Pilot 단계 없이 2025년부터 Demo 단계에 돌입, 2030년까지 HyREX 기술을 검증할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2050년까지 포항·광양제철소의 기존 고로 설비를 단계적으로 수소환원제철로 전환해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강경민 기자/도움말=포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