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가 아파트 값이 역대 최대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 수십억원씩 하는 초고가 아파트는 금리 인상 국면에서도 신고가를 경신하는 등 상대적으로 주택 시장 침체에 영향을 덜 받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금리 인상 속도가 가팔라지고 서울 강남권 초고가 아파트조차 더 이상 안전자산이 아니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대장주 아파트' 값도 줄줄이 떨어지고 있다.
1일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올 10월 KB선도아파트50 지수는 97.58을 나타냈다. 전월(99.32)에 비해 1.75% 하락했다. 2009년 1월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역대 최대 하락 폭이다. 이 지수는 올 7월 마이너스(-)0.24%를 기록하며 하락 전환 뒤에 하락 폭을 키워가고 있다.
이 지수는 전국 아파트 단지 중 시가총액 상위 50개 단지를 선정해 시가총액 변동률을 보여주고 있다. 부동산 시장 상황 변화에 따른 가격 변동을 민감하게 보여주고 있어 선행지표로 주로 활용되고 있다. 헬리오시티, 파크리오, 반포자이, 리센츠, 잠실엘스, 래미안퍼스티지, 도곡렉슬 등이 포함돼 있다.
올 9월만 해도 서울 성수동에 있는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 아크로 서울 포레스트의 복층형 펜트하우스(전용면적 264㎡)가 130억원에 거래되면서 '초고가 주택 시장은 시장 침체의 영향을 덜 받는다'는 평가가 나왔다. 실제 부동산 시장 하락장 속에서도 초고가 아파트는 신고가를 경신하기도 했다.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로 꼽히는 타워팰리스 3차(전용면적 235㎡ 기준)는 올 8월에 64억원에 거래됐다. 직전 최고가는 올 3월의 55억4000만원이었다.
하지만 고가 아파트들이 모여 있는 강남권 부동산 시장마저 냉각기에 접어드는 모습이 나타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게 인근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들의 얘기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송파구 아파트 값은 올 2월 하락세로 돌아선 후 매월 하락 폭을 키워가고 있다. 올 9월엔 송파구 아파트 값이 전월에 비해 0.99% 하락했다. 서울 다른 지역에 비해선 늦게 하락세로 돌아섰지만 강남구와 서초구, 강동구도 올 하반기 들어 아파트 값 낙폭이 확대되고 있다.
수억원씩 집 값이 떨어져 거래된 사례도 속속 나오고 있다.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전용면적 84.8㎡ 기준·12층)는 지난달 초 19억5000만원에 거래가 이뤄졌다. 지난해 10월 최고가였던 27억원에 비해 7억5000만원 하락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통상 초고가 아파트는 경기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다는 인식이 있다"면서도 "다만 금리가 빠르게 높아지면서 강남권의 '똘똘한 한 채'도 더 이상 안전자산이 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 침체 우려까지 불거지면서 자산가들도 발 빠른 투자보다는 관망세를 보이고 있는 영향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집 값 전망은 더 어두워지고 있다. KB국민은행의 서울 매매전망지수를 보면 올 10월 58.5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13년 4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 지수는 100을 초과할수록 상승, 밑돌수록 하락 전망 비중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