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0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거리. 전날까지 불야성을 이뤘던 거리가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였다. 압사 사고 희생자에게 조의를 표하기 위해 대부분 상가가 영업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거리 곳곳에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팻말과 흰색 근조 국화가 걸려 있었다. 이태원 메인거리에 불빛이 사라진 건 2020년 12월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상가 일대가 영업을 중단한 지 약 2년 만이다.
압사 사고가 발생한 골목과 20m가량 떨어진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는 희생자를 위한 추모 공간이 마련됐다. 쌀쌀한 날씨에도 늦은 시간까지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시민들은 근조 국화꽃 한 송이를 놓고 묵념하며 애도했다.
경기 오산에서 온 오모씨(31)는 “희생자 중에 이번 핼러윈 축제가 마지막이 될 거라 상상한 사람이 누가 있었겠나”라며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게 너무 황당하고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추모 현장에는 배달 음식이 놓이기도 했다. 사고 희생자가 평소 좋아했던 음식이라고 했다. 햄버거를 내려놓은 한 배달 기사는 “주문한 사람이 추모 공간 앞에 두고 가면 다음날 치우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번 사고에는 14개국 26명의 외국인 희생자가 나왔다. 외국인 희생자가 많았던 만큼 다양한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이태원역 추모 공간을 찾았다. 이곳에서 눈물을 흘리던 중국인 왕쓰치 씨(26)는 “압사 사고 당시 현장에서 친구를 잃었다”며 “이미 장례식장을 다녀왔지만 너무 미안한 마음에 그대로 집으로 갈 수 없어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러시아에서 온 리마 씨(25)는 “한국에 함께 온 러시아인 여성 네 명이 이번 사고로 숨졌다”며 “대부분 같은 나이대 친구들이라 더욱 슬프다”고 말했다.
희생자에 포함된 것으로 뒤늦게 알려진 배우 이지한 씨(24)와 치어리더 김유나 씨(24)에 대한 추모도 이어졌다. 이씨의 소속사 935엔터테인먼트는 “소중한 가족 배우 이지한이 하늘의 별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났다”고 밝혔다. 김씨의 동료와 지인들은 고인의 인스타그램에 “한참을 울었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등의 댓글을 달았다. 온라인에서도 ‘추모 물결’ 이어져
이태원 참사에 대한 추모 물결은 온라인에서도 이어졌다. 20~30대가 주로 이용하는 SNS인 인스타그램에는 #prayforitaewon, #이태원압사사고, #이태원압사 등의 해시태그가 수만 개 달렸다. 틱톡에선 #prayforitaewon이라는 태그를 건 게시물이 3600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일부 외국인은 해당 해시태그를 다른 친구들에게 전파하며 릴레이 추모 운동을 벌였다.
SNS 게시물이 언론 보도보다 빠르게 올라와 사고 상황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직장인 엄모씨(32)는 “이태원에서 사고가 났다는 지인 소식을 접하고 지난 29일 오후 11시에 언론 보도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봤지만 한 군데도 보도한 곳이 없었다”며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영상을 통해 초기 상황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29일 오후 10시24분께 경찰 및 소방당국에 이태원 압사 사고 첫 신고가 들어왔지만, 최초 언론 보도는 약 1시간 뒤에 나와 일부 시민 사이에서 혼란이 발생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정·재계에서도 아침 일찍부터 애도
압사 사고 희생자 가운데 중고생도 6명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모두 서울지역 학교 재학생으로 밝혀졌다. 교사도 3명(경기·서울·울산 각 1명)이 희생됐다. 이날 20대 여성이 추가로 사망함에 따라 이태원 사고 희생자는 154명에서 1명 추가돼 155명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이날 오전 9시30분께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는 흰 국화 한 송이를 올리고 20초간 묵념했다. 이후 오전 10시14분께 오세훈 서울시장이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오 시장은 한덕수 국무총리,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과 함께 방문했다.
권용훈/이광식/최예린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