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도자의 대모' 김익영 "백자의 하얀색에는 수만가지 색이 담겨있죠"

입력 2022-10-31 18:01
수정 2022-11-01 01:14
조선시대에 백자는 일상의 물건이었다. 예술품으로 여겨진 청자와는 결이 달랐다. 그래서 백자는 소박하고 단순하지만 자연스럽고 편안한 모습이다. 백성의 삶이 녹아든 백자의 미학을 반세기 넘게 현대적인 예술품으로 되살린 이가 있다. 올해 미수(米壽·88세)를 맞이한 토전(土田) 김익영 선생(사진)이다. 그는 요즘도 매주 한 번씩 가마에 불을 지피고 20~30여 점의 작품을 구워내 ‘현대 도자의 대모’로 불린다.

김익영 선생의 개인전 ‘보와 궤’가 이달 2일부터 서울 인사동 갤러리밈에서 열린다. 2년 만의 단독 전시로 그의 대표작과 신작 등 30여 점이 전시된다. 보와 궤는 본체와 덮개가 있는 제사 그릇인데 보는 네모, 궤는 사발 모양을 하고 있다.

서울대 화학공학과와 동 대학원 요업공학과를 졸업한 김 작가는 홍익대 공예미술학과에 편입해 1년간 도자를 공부했다. 그는 미국 알프레드 요업대학원에서 유학할 때 조선의 백자를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일흔이 넘은 영국의 유명 도예가 버나드 리치는 도예작가 지망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평생의 경험에 비추어 말하건대, 조선백자의 미학이 오늘날 현대 도예가들이 지향해야 할 최고의 경지다.” 리치는 1935년 서울 덕수궁에서 전시를 한 뒤 영국에 돌아갈 때 조선의 달항아리를 구입하면서 “나는 행복을 안고 갑니다”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 도예가다. 그때의 달항아리는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조선백자의 미학’을 가슴에 새기고 1961년 귀국한 김 작가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3년간 학예연구관을 지내며 조선백자를 연구했다. 1963년 광주 무등산 분청사기 가마 발굴에 참여하며 무더기로 쏟아진 제기(祭器)의 형태에 빠져들었다. 조선 초에 중국에서 건너온 청동 제기가 유행했지만 값이 너무 비싸 조선의 도공들이 정성껏 흙으로 제기를 빚었다. 거푸집 없이 손으로 형태를 빚어내며 압도적인 조형미의 작품을 남겼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다.

김 작가는 제기의 형태에서 착안해 도자 표면에 불규칙적인 각을 새겨넣는 ‘면 깎기’ 방법을 고안했다. 물레를 돌리다 방망이를 두드리거나, 칼로 깎아내는 작업을 통해 조형미를 살렸다. 그는 “전통은 옛것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옛 정신을 내 것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라며 “달항아리와 제기, 반상기 등 조선백자가 가진 수많은 형태를 흡수해 창작해왔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제사와 의례에 쓰인 조선시대 ‘제의기(祭儀器)’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인다. 그의 백자는 색감도 다양하다. 백토와 유약을 자유자재로 조합해 각각의 디자인에 맞는 백색을 창조해냈다. 김 작가는 “백자라고 하면 하얀 도자기만 생각하는데, 백색은 한 가지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색의 범위를 갖고 있다”고 했다.

도자로 만든 의자 ‘오각의 변주’ 시리즈도 함께 선보인다. 2013년 밀라노 트리엔날레에서 호평받은 작품이다. 비대칭의 면들이 조화를 이루며 의자가 갖는 묵직함과 평온함을 표현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영국 대영박물관과 빅토리아앤알버트박물관 등 세계 25개의 미술관과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전시는 오는 12월 18일까지.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