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업계에 큰 장이 섰다.”
국내 회계법인들이 총 220개의 상장법인 및 비상장 대기업의 외부감사인 자리를 놓고 대격돌을 펼치고 있다. 신(新)외부감사법 시행으로 2019년 말 정부로부터 처음 감사인 지정을 받은 이들 기업이 2020회계연도부터 3년간의 지정 기간을 끝내고 내년부터 자유롭게 최대 6년간 감사인을 선정할 수 있게 돼서다.
삼정회계법인이 지난주 삼성전자의 새 감사인으로 낙점받은 데 이어 SK하이닉스, 신한금융지주 등 대어(大魚)를 낚으면서 초반전 기선을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회계업계 부동의 1위 삼일회계법인은 KB금융지주 등의 신규 감사인으로 선정되면서 추격에 나서고 있다. 지정제 풀리는 220곳 감사인은 누구?31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올해 말로 감사인 지정 기간이 완료되는 삼성전자 등 220곳이 자유롭게 외부 감사인을 선임할 수 있게 되면서 회계업계 내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아직 초반이긴 하지만 승기는 삼정회계법인이 잡아가는 모양새다. 최대어로 분류됐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외부감사인 자리를 동시에 꿰찼기 때문이다. 삼정은 또 국내 4대 금융지주 중 한 곳인 신한금융지주, 국내 1위 증권사인 미래에셋증권 등의 외부감사도 내년부터 맡기로 했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삼정은 최근 수년간 신입·경력 회계사를 꾸준히 영입하면서 몸집을 불린 전략 등이 빛을 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매출 기준 국내 1위 회계법인인 삼일은 내심 기대했던 삼성전자 감사인 경쟁에서 탈락하면서 체면을 구겼다. KB금융지주의 신규 감사인을 맡으면서 체면치레는 했지만 자존심 회복을 위해서는 남은 외부 감사인 수주 경쟁에서 압도적인 성과가 필요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삼성생명, 삼성카드, 에쓰오일, 카카오, 엔씨소프트, 대한항공, CJ, CJ제일제당 등 다른 대기업도 올해 말 감사인 지정 기간이 끝나 내년부터 외부감사를 담당할 회계법인 선정 절차를 밟고 있다. 이르면 다음주부터 이들 기업은 신규 감사인을 속속 발표한다. 삼일과 삼정은 물론 안진 한영 등 다른 대형 회계법인도 이들 대기업의 신규 감사인 자리를 따내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회계업계에서는 올해를 시작으로 해마다 신규 감사인 선정을 놓고 회계법인 간 경쟁이 되풀이될 것으로 전망한다. 2020사업연도부터 3년간 맡을 감사인을 2019년 말 지정받은 기업들이 올해 말 내년도 이후 외부 감사인 교체에 나섰듯, 2020년과 2021년 말 감사인을 지정받은 기업도 2023년 말, 2024년 말 외부 감사인 교체에 나설 것으로 전망돼서다. 2020년 말에는 215개 기업, 2021년 말에는 159개 기업이 정부가 지정한 감사인을 선정했다. 올해 감사인 지정되는 기업도 관심
올해 새롭게 정부가 감사인을 지정하는 229곳의 외부 감사인이 누가 될지도 관심사다. 금융감독원은 신외감법에 따라 상장사 166개, 대형 비상장사 63개 등 총 229곳을 주기적 지정 대상 기업으로 선정했다. 시가총액 상위 100개사 중에서는 현대차, SK이노베이션, LG 등 15개 기업이 있다. 금감원은 늦어도 11월 중순까지 해당 기업의 감사인을 확정하고 통보한다는 방침이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2015년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로 어려움을 겪었던 안진은 2019년 말 삼성전자의 주기적 지정 감사인으로 선정되면서 매출을 회복할 수 있었다”며 “현대차 등 대기업 감사인으로 누가 지정되는지에 따라 회계법인의 희비가 엇갈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계에서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에 여전히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감사 비용 인상뿐만 아니라 회계 처리 과정에서도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외부 감사인이 수시로 바뀌는 것이 오히려 회계 투명성을 해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에서는 재계와 회계업계 등 의견을 수렴해 이르면 올해 말 외부감사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훈/서형교 기자 lee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