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MF(국제통화기금) 발생 당시 사업을 했을 땐 젊은 패기 덕인지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사업은 잘 안됐지만 이겨냈고, 애들도 훌륭하게 자랐습니다. 젊어서 고생해 그런지 지금 몸 구석구석 안 아픈데가 없고 노후 준비도 안돼있어 막막합니다. 자식들도 앞가림 하느라 바쁜지 연락도 잘 안오네요."-75세, 재활용 업체 운영
늙어가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나라. 2017년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는 2024년 하반기, 전체 인구 대비 노인인구가 20%에 달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예정이다. 노년기(老年期)는 60세부터다. 직장에서 은퇴 후 소득이 급감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IMF 사태를 거치며 자녀 교육에 올인하고 부모 부양에 힘쓰며 미처 노후 준비를 하지 못한 대한민국 6070세대가 파산절벽에 내몰리고 있다. 고령층 개인파산 늘어…소득 줄고 자산은 실물에 편중5일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원행정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60대 이상 고령층 파산신청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60대 이상 고령층의 개인파산 신청건수는 지난해 27.9%로 전년대비 3.1%포인트(p) 상승했고, 올 상반기에는 29.4%로 비중이 더 커졌다. 70대 이상 비중도 2020년 6.1%, 2021년 7.3%, 올 상반기 8.3%로 늘었다.
개인파산이란 채무자가 채무를 갚을 수 없는 파탄 상태에 빠졌을 때, 법원의 파산 선고를 통해 총 재산에 한해 채무를 갚도록 하는 제도다. 60대 이상 개인 파산이 증가하는 배경은 소득 감소 및 실물 자산 편중 구조에 기인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60대 이상의 평균 자산은 4억8914만원이었고, 이중 실물 자산이 4억198만원으로 전체의 82.2%를 차지했다. 고령층이 낼 수 있는 처분가능소득은 1억원이 채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60~70대의 개인파산 증가세는 사그라들 기미가 없다. 은퇴 자금과 실물 자산을 담보로 자영업에 뛰어드는 인구가 점차 많아지고 있어서다. 국내 60세 이상 자영업자는 2019년 176만명에서 지난해 8월 기준 193만명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자영업자가 561만명에서 555만명으로 줄어든 것과 대비된다. 고금리 고물가로 민간소비가 둔화하는 등 실물경제가 둔화하면 6070은 직격탄을 맞을 수 밖에 없다.
부채 부담도 노후생활의 질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60~70대의 빚은 증가 속도 뿐 아니라 질도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연령대별·업권별 가계대출 구성비' 자료에 따르면 60대 이상 고령층의 대출 비중은 비은행권에서 두드러지게 증가했다. 이들의 은행권 대출 비중은 2016년 13.7%에서 올해 2분기 14.4%로 0.7%포인트 늘어났고, 같은 기간 비은행권 대출 비중은 20.4%에서 24.8%로 4.4%포인트 증가했다.
은행 대출이 꾸준히 증가하는 동시에 보험사, 카드사 등 2금융권 대출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소득이 제한적이다보니 빚을 내 다시 빚을 막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만 60세 이상의 보험사 가계 대출 잔액은 11조1625억원이었다. 이는 2020년 말 대비 10%(1조145억원) 증가한 수준으로, 같은 기간 전체 보험사 전체 가계대출 증가율(5.5%)의 배에 달한다. 보험사 약관대출은 보험료 담보 대출이라고도 한다. 납입한 보험료 내에서 대출을 받는 것으로, 계약자가 가입한 보험 해약환급금의 70∼80%의 범위에서 수시로 대출받을 수 있는 제도다.
서류 배달일을 하는 70세 A씨는 은행 대출금을 다 갚지 못했지만, 올해 초 보험사 대출을 처음으로 받았다. 아내가 수술한 이후 의료비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어서다. A씨는 "직장에서 은퇴한 이후 생활비 고민이 이렇게 클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수입은 거의 없는데 의료비에다 식비, 주거비 등 지출해야 할 금액은 자꾸 커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금융채무 불이행자 늘어… 저소득 고령층 소득기반 확충해야갚을 능력에 비해 빚 규모가 커지면서 금융채무 불이행자도 급격히 늘고 있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60대 이상 금융채무 불이행자는 2015년 7만3282명에서 2019년 11만8202명으로 4만5000명 가까이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전체 금융채무 불이행자 수는 87만3938명에서 83만7767명으로 줄었다. 대출금리 급등으로 인한 금융부실 위험은 더 커질 가능성이 많은 만큼 6070세대를 위한 현실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高)금리, 고(高)물가 부담 속 생활비가 크게 증가하는 가운데 낮은 공적연금 수준, 자녀로부터 지원받는 금액 감소 등으로 살림살이가 빠듯해지면서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고령층도 늘고 있다. 문제는 이 고령층이 노동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65세 B씨는 "운좋게 취직에 성공해 참 다행이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B씨는 "지금 경기도에 있는 집 한 채가 평생 모은 재산의 전부"라며 "허튼 짓 한 번 안하고 직장 다니면서 열심히 돈을 모았지만 아들 둘 키우고 부모님 모시니 남질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대출 받아 생활하며 빠듯하게 지내다 취직한 덕에 손주들 용돈도 주고 있다. 일하다보니 마음가짐도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며 웃었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0∼2021년 고령층(60세 이상) 취업자 수는 266만8000명이 증가하며 전체 취업자수 증가 규모(324만명)의 82%를 차지했다. 전체 고용률은 2010년 58.9%에서 2021년 60.5%로 소폭 상승했지만, 고령층 고용률은 36.2%에서 42.9%로 큰 폭 상승했다.
고령층의 고용 확대는 주로 임금 수준이 낮은 산업에 집중됐다. 실제 고령층이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이후 재취업한 일자리의 상당수가 이전 일자리와 관련성이 낮고 임금수준도 열악한 상용직·임시직이었다. 산업별로는 보건사회복지, 사업서비스, 건설업 등의 증가폭이 컸고 직업별로는 단순노무, 기능·기계조작 및 서비스·판매에서 취업자수가 급증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조강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실 과장은 "사회복지 지출을 확대하고 기초연금 수준을 증대해 비자발적으로 일을 해야 하는 저소득 고령층의 소득기반을 확충해야 한다"며 "퇴직 후 재고용 등을 통해 주된 일자리에서 오래 일할 수 있는 여건도 마련해 축적된 인적자본의 효율적 활용을 유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경원 NH WM마스터즈 자문위원은 "노년기의 빈곤한 삶에 한줄기 희망을 주는 건 정부의 각종 지원 정책인데 아직 제도가 다양하진 않은 상황"이라며 "정부의 세심한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나마 다행인 점은 노년 인구를 위한 정책 지원 규모가 커지고 있는 점"이라며 "사는 주택을 담보로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주택연금 제도 등이라도 활용해 더 늦기 전에 노후 대비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끝)
채선희 한경닷컴 기자 csun0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