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회사법 단일화 논의 재점화되나…법무부, 연구용역 의뢰

입력 2022-10-31 17:00
수정 2022-10-31 18:31

법무부가 여러 법에 흩어진 회사 관련 법을 단일화하는 방안을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 법 제정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공고함으로써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으는 중이다. 과거 수차례 논의됐다 무산됐던 단일 회사법 제정 움직임에 다시 불을 붙일지 관심이 모인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최근 ‘단일 회사법 제정을 중심으로 한 회사 관련 법제 개선 방안’에 대한 연구 용역 입찰을 공고했다. 법무부는 이날까지 가격입찰서와 제안서를 접수한 뒤 평가를 거쳐 연구용역을 맡길 곳을 선정할 방침이다.

법무부가 연구 용역을 맡기려는 단일 회사법 제정 방안은 현재 상법과 자본시장법, 공정거래법 등 여러 종류의 법에 흩어진 회사 관련 법을 한 데 모아 별도 법안으로 만드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법무부는 이번 공고에서 단일 회사법 제정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안할 것을 요구사항으로 걸었다. 이와 함께 △미국·영국·독일·일본 등 외국의 단일 회사법 체계 △상장회사 특례 규정이 상법과 자본시장법에 나눠지게 된 배경 △경제법령상 회사 관련 법제의 산재 현황 △상장회사에 적용되는 별도 특별법 제정의 타당성 등을 연구 대상으로 지정해놨다.

회사법 단일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오래 전부터 제기돼왔다. 기업 경영에 대한 규정이 여러 법에 뿔뿔이 산재돼 있다보니 기업들이 자사를 둘러싼 각종 법률 현황을 확인하는데 적잖은 불편함을 느끼고 있어서다. 예컨대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한 내용은 주로 상법이나 공정거래법을, 재무구조나 자금 조달에 대한 내용은 자본시장법, 외부감사에 대한 내용은 외부감사법에 규정돼있다. 벤처 투자를 하는 기업은 벤처기업법도 확인해야 한다. 법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 역시 법무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 중소벤처기업부 등 다양하게 나뉘어져 있다. 학계에서도 “회사법이 독립돼있지 않고 상법을 구성하는 여섯가지 부문 중 하나에 포함된데다 상법 회사편 안에서도 기업법 성격의 조문과 증권거래 관련 특례규정이 혼재돼 있어 법 체계의 정합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이어져왔다.

법조계에선 법무부가 단일 회사법 제정을 다시 논의할만한 여건이 되는지를 파악해보기 위해 관련 연구용역 의뢰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물적분할시 소액주주 권익보호, 전자 주주총회 도입 등 회사 관련 입법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인만큼 회사법 단일화에 대한 의견을 모아볼 분위기는 어느 정도 조성됐다는 평가다. 법조계 관계자는 “논의를 어떻게 끌고 가면 좋을 지 방향을 잡기 위해 연구용역을 통해 여러 선택지를 확인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단일 회사법이 과거에도 제정 여부를 두고 논의됐다 무산되기를 반복했음을 고려하면 이번 연구용역 의뢰가 법안 탄생으로 이어질 지는 두고봐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법무부는 2014년 상법에 여러 형태의 회사를 포괄해 하나의 법안으로 만드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관련 부처간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없었던 일이 됐다. 2018년에는 중기부가 단일 회사법 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공청회를 열었지만 법 제정을 추진할만한 동력까진 얻지 못했다. 국회에선 2020년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미래 지향적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독립된 상장회사법’을 대표 발의했지만 2년 넘게 계류 중이다.

일단 법 제정이 기존 여러 법 체계를 뜯어고쳐야 하는 큰 작업인만큼 인내심 있게 논의를 이어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는 평가다. 법 제정 방향을 두고 이해 관계자들간 이견이 컸던 것도 장애물로 작용했다. 당초 기업들은 단일 회사법 제정과정에서 규제 완화를 기대했지만 정부 측에선 오랫동안 기업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감사위원 분리선출 의무화, 최대주주 의결권 3%로 제한(3%룰) 등 기업들을 옥죄는 법안이 줄줄이 도입되면서 기업과 정부간 입장차는 더욱 벌어졌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은 법 체계 정비보다는 법 제정 방향에 훨씬 더 큰 관심을 보인다”며 “이번에도 규제 강화 쪽에 초점이 맞춰진다면 단일 회사법 논의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