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책임 경영’ 선언은 미완성 상태다. 아직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제계에서 이 회장이 내년 3월 등기이사에 취임하며 ‘마지막 퍼즐’을 맞출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대주주 책임 경영 강화30일 경제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등기이사는 이사회에 참석해 회사 경영에 대한 의사 결정을 내리고 법적 책임을 진다. 오너 일가가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책임감을 갖고 경영 전면에 나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4대 그룹 총수 중 이 회장을 제외한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각각 SK㈜, 현대차, ㈜LG 사내이사에 올라 있다. 정 회장과 구 회장은 이사회 의장도 겸하고 있다. 산업계 관계자는 “대주주 책임 경영의 일환으로 이 회장이 등기이사에 오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는 분위기”라며 “시기는 내년 3월이 유력할 것으로 거론되고 있다”고 말했다.
등기이사 선출은 주주총회 결의를 거쳐야 한다. 다음달 3일 삼성전자 임시 주주총회가 예정돼 있지만, 주요 안건은 사외이사 결원에 따른 선임(유명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허은녕 서울대 공과대학 교수)이다. 안건을 추가하려면 별도 이사회를 열어야 한다.
이 회장이 등기이사로 복귀하면 2018년 삼성그룹 동일인(총수) 지정, 지난 27일 회장 취임에 이어 책임 경영 체제 구축을 완료하게 된다. 2019년 10월 임기 만료로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지 4년여 만에 복귀하는 것이다. 이 회장은 2016년 10월 임시 주주총회를 거쳐 등기이사에 오른 바 있다. 당시 ‘갤럭시노트7 리콜’ 사태로 위기가 확산하자 책임 경영에 나선 것이었다. 이사회 의장은 따로다만 이사회 의장은 당분간 맡지 않는 방향으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가 지배구조와 경영 체제를 투명하게 하겠다는 취지로 2018년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 역할을 분리했기 때문이다. 당초 이 회장은 2016년 10월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오른 뒤 이사회 의장까지 맡아 회장 승진을 추진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해 11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올스톱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미 회장으로 취임했고 등기이사만 오르면 삼성 경영 전반을 지휘하는 데 문제가 없다”며 “선진 기업처럼 이사회 의장은 따로 두는 형태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제계 안팎에선 삼성이 중장기적으로 스웨덴 최대 기업집단인 발렌베리그룹처럼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대주주와 이사회, 전문경영인으로 이어지는 ‘3각 체제’가 굳어진다는 얘기다. 이 회장은 부회장이던 2020년 5월 경영권 승계 등과 관련해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경제계 관계자는 “나중에 전문경영인 체제가 되더라도 신사업 제언 등 큰 틀에서 삼성가의 역할은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금도 이 회장은 반도체와 함께 바이오, 인공지능(AI), 6세대(6G) 이동통신 등에서 사업 기회를 발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