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경찰관을 policeman 대신 police officer로, 소방관을 fireman 대신 fire fighter로 부르고 있다. policeman, fireman이 남성 위주의 성차별적 표현이라는 지적이 제기돼 성 중립적인 단어를 따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편견(bias)이 드러나지 않는 용어나 표현을 쓰자는 캠페인을 ‘PC’라고 한다. 영어 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의 약자로, 1980년대 미국 여성단체와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일기 시작한 사회운동이다. 얼마 전 대한항공이 스튜어디스와 스튜어드의 통칭으로 채택한 flight attendent 역시 PC가 낳은 대표적 단어 중 하나다.
PC는 성(性·gender) 갈등뿐만 아니라 인권·인종·민족·종교 등에서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쳐왔다. 우리나라에서 장님·봉사·맹인이라는 단어 대신 시각장애인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PC의 영향이다. PC는 일견 좋은 취지를 갖고 있으나, 면밀히 살펴보면 폐해 또한 상당하다. KBS에서는 노래 ‘미미’의 가사 ‘꿀단지 손에 들고서 온종일 동네 거닐다 당신을 만난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네’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나온다고 해서 방송불가 결정을 내렸다. 미국 흑인들은 스스로를 ‘black’으로 부르길 좋아하는데, PC가 채택한 ‘African American’은 그들과 실질적 연고가 없는 아프리카와 그들의 정체성을 연결 지어 오히려 상처를 주고 있다.
경기도의 한 대학에서 배울 ‘學’자에 아들 ‘子’만 들어간 게 여성을 배제하는 성차별이라며 ‘子’를 ‘子女’로 고쳐 새긴 과잠(과점퍼)을 만들어 논란을 빚은 적이 있다. 벙어리장갑을 ‘손모아장갑’으로 쓰도록 강요하거나, 반팔·긴팔 대신 반소매·긴소매로 부르면 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되는지 의문이다.
시대의 지성 움베르토 에코는 PC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신(新)홍위병’이라고 했다. 전체주의·교조주의로 흐르고 있는 PC보다는 일본 ‘만화의 신’ 데즈카 오사무의 ‘작가 3원칙’이 더 호소력 있는 것이 아닐까. “전쟁이나 재해의 희생자를 놀리는 것, 특정 직업을 깔보는 것, 민족이나 국민 그리고 대중을 바보로 만드는 것. 이것만은 절대로 범해선 안 된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