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열린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가장 주목받은 두 사람이 있다. 사회자인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과 이날 가장 핵심 주제인 부동산 대책의 중심에 있었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서울대 법대 82학번. 2012년 대선 과정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던 서울대 82학번 출신들이 10년이 지난 2022년에도 정관계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시 서울대 법대 82학번 전성시대원 장관은 가장 먼저 이름을 날린 서울대 법대 82학번 중 한 명이다. 2000년 정계 입문 이후 남경필·정병국 전 의원과 함께 '남원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당시 한나라당 소장파를 이끌었다. 정계 입문 전에도 서울대 법대 수석 입학, 사법시험 수석 합격 등으로 유명했다.
2008년엔 44세의 나이로 3선 의원이 됐고 이후 한나라당 사무총장 및 제주도지사 등을 거쳤다. 지난 대선 때는 윤석열 후보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정책본부장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는 기획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국토부 장관으로 임명된 이후에도 각종 부동산 관련 정책 개발을 주도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최 수석은 기재부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물이다. 서울대 법대를 수석 졸업했고, 행정고시 29회에 합격해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금융위원회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과 기재부 경제정책국장,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기재부 1차관 등을 지냈다. 대선 캠프에서는 일하지 않았지만 인수위 때 경제1분과 간사로 내정된 이후 윤 대통령의 신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 외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도 서울대 법대 82학번이다.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의 부위원장(장관급)을 맡고 있는 나경원 전 의원도 마찬가지다. 국회에서 여야 협상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와 조해진 국회 정보위원장(국민의힘 의원)도 서울대 법대 82학번 출신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82학번도 곳곳에 포진해있다. 윤 대통령의 대선 공얄을 만드는 데 핵심 역할을 했던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이 대표적이다. 서영경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도 있다.
○2012년 대선 주역이었던 82학번
서울대 82학번이 정관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2년 대선 때였다. 강석훈 나경원 조해진 원희룡 등 인사는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캠프의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를 측면 지원했고, 서울대 경제학과 82학번 출신인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당시 안철수 후보의 경제정책을 전담했다.
이후 박근혜 정부 3년차인 2016년 강석훈 의원이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내정되면서 서울대 82학번은 다시 주목을 받았다. 기재부 1차관(최상목), 2차관(송언석),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김철주) 등 경제팀 요직을 다수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9년 이른바 '조국 사태'가 발생하면서 서울대 82학번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내정되면서 82학번들끼리 공개 저격하는 일이 벌어졌다. 원 장관이 포문을 열었다. 그는 "친구로서 조국 후보에게 권한다"며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면서 '문재인의 조국'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국민의 조국'은 이미 국민들이 심판했으니 이제 그만하자"고 말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82학번인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이에 대해 "희룡아 그렇게 살지마라"라며 역공했다. 이 교수는 "정치도 좋고 계산도 좋지만 그렇게까지 해야겠나"라며 "정치만큼 잔혹한 게 없었음을 누차 보았기에 네(원 장관)이 무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새삼 든다"라고 공세를 폈다.
○입학할 때부터 '똥파리 학번' 별명서울대 82학번이 10년에 걸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워낙 인재가 많기 때문이다. 이들은 입학할 때부터 '똥파리' 학번으로 불렸다. 당시 정부 정책에 따라 입학 인원이 크게 늘어나면서 다른 학번들 보다 인원이 많았다. 82학번을 발음대로 '파리'라 부르다가 워낙 인원이 많다보니 '똥파리 학번'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서울대 82학번은 대부분은 '베이비붐 세대의 막내'뻘인 1963년생인데 대한민국의 성장을 고스란히 누린 세대로 평가 받는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학생운동 대중화를 몸으로 겪었고, 졸업할 때엔 3저(저유가·저금리·저환율) 호황으로 일자리 걱정을 덜 하는 행운을 얻었다. 1998년 외환위기를 전후해 명예퇴직자들이 다수 발생하면서 젊었던 82학번들은 오히려 승진의 기회를 노릴 수 있었다.
정관계 안팎에서는 서울대 82학번 출신 인재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이 10년째 요직을 차지하는 바람에 후배들이 기회를 못 잡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6년 전에도 서울대 82학번(강석훈)이 대통령실 경제수석을 지냈는데, 지금도 82학번(최상목)이 그 자리를 맡고 있는 게 그 방증이라고 일부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학번들은 꼬집는다. 90년대 초반 학번인 한 경제관료는 "82학번들은 40대 중후반부터 정관계에서 두각을 드러냈지만, 이후 세대는 인사적체에 밀려왔다"며 "최근엔 세대교체 바람에 바로 90년대 후반 이후 학번이 주목받으면서 중간에 '낀세대'가 된 이들이 많다"고 토로했다.
정관계 밖으로 눈을 돌리면 유명작가인 김난도 서울대 교수와 '주사파의 대부'로 불렸던 김영환 북한 민주화 네트워크 연구위원 등도 서울대 82학번 출신이다. 산업계에는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 최주선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권봉석 LG 부회장, 지동섭 SK온 사장, 문홍성 두산 사장 등이 있다. 금융권에는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과 박정림 KB증권 사장, 변재상 미래에셋생명 사장 등이 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