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또다시 대규모 적자 국채를 발행해 30조엔(약 292조원) 규모의 종합 경제 대책을 마련한다. 물가 급등에 대응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대부분 현금 퍼주기식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주요 7개국(G7) 가운데 최악인 일본 재정의 주름이 더욱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보조금 뿌려 난방비 낮춘다
27일 일본 미디어들에 따르면 일본 정부와 집권여당인 자민당은 지난 26일 2차 추가경정예산을 29조엔(약 282조원)이 넘는 규모로 편성한다는 데 합의했다.
28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임시국회에 제출하고, 연내 예산안을 성립시킬 계획이라고 산케이신문은 전했다. 지방자치단체와 기업 활동을 포함한 전체 사업 규모는 67조엔으로 추산된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날 총리 관저에서 스즈키 슌이치 재무상을 만나 “세계 경제의 후퇴 위험성을 보완할 수 있는 경제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일본 정부는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고 국가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대책의 대부분은 퍼주기성으로 분석된다. 종합 경제 대책의 핵심은 에너지값 급등에 따라 늘어난 가정의 난방비, 연료비 부담을 현금 지급과 보조금으로 덜어주는 것이다. 자민당은 일반 가정의 월간 전기요금의 20%에 해당하는 2000엔, 도시가스 요금의 900엔을 낮추는 방안을 제시했다.
일본 정부가 전력 소매업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해 전기료와 도시가스 요금을 낮추는 방식이다. ㎾(킬로와트)당 일반 가정용 전기료는 7엔, 기업용 전기료는 3.5엔을 지원한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내년 1분기 동안에만 1조엔의 예산을 투입할 것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도시가스도 ㎥당 30엔을 지원할 방침이다.
정유회사에 보조금을 지급해 휘발유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추는 제도도 계속 시행하기로 했다. 산케이신문은 이번 대책을 통해 일반 가정이 내년 1~9월 난방비와 연료비 부담을 4만5000엔가량 덜게 될 것으로 추산했다. 2050년 정부 부채 2527조엔0~2세 유아 한 명당 10만엔 상당의 출산·육아용품 쿠폰을 지급하는 방안도 담겼다. 관광 지원, 기업의 재교육 프로그램 지원 등 경제구조 개혁과 인재 투자를 목적으로 내건 정책도 대부분 퍼주기식 지원 대책으로 채워졌다.
추경 대부분은 국채를 발행해 조달할 계획이다. 이미 1000조엔을 넘는 국가 부채가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작년 말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는 256%다. G7 가운데 압도적인 1위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한 2020년 일본 정부는 세 차례에 걸쳐 293조엔 규모의 코로나 경제 대책을 시행했다. 일본 GDP의 54%로 30~40%에 그쳤던 미국 등 주요국보다 규모가 훨씬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GDP는 올 2분기에야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 말 수준을 회복했다. 주요국 가운데 가장 느린 회복 속도였다.
다이와종합연구소는 일본의 경제성장률을 1%로 가정했을 때 2050년이면 정부 부채가 2527조엔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간다 게이지 다이와종합연구소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정부 부채가 GDP의 3배를 넘으면 재정 신용도 저하와 국채금리 상승을 피할 수 없다”며 “재정의 지속 가능성이 극히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마이너스 금리 정책으로 일본 정부의 국채 상환 부담을 최소화하고 있는 일본은행은 이날부터 이틀간 일정으로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시작했다. 세계 중앙은행들이 앞다퉈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과 대조적으로 일본은행은 이번에도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유지할 전망이다. 회의 결과는 28일 오전 발표된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