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흠 한국디자인진흥원 원장 "친환경·디지털 전환에 맞춰 영세 디자인기업 혁신 돕겠다"

입력 2022-10-26 16:00
수정 2022-10-26 16:21

“한 디자인 전문기업은 신제품 기획에 새롭게 도전하면서 단순히 디자인 용역만 했을 때보다 10배가 넘는 수익을 얻었다고 합니다. 디자인 기업들이 기획부터 엔지니어링까지 제조 과정 전반을 다룰 수만 있다면 확실한 자생력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윤상흠 한국디자인진흥원 원장(사진)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디자인 업계는 전문기업의 영세성, 저가 용역, 과당 경쟁 등으로 산업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기에 한계가 있는 상황”이라며 “영세한 디자인 전문기업들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윤 원장은 “산업 수출을 위해 디자인 기업들의 해외 전시 참가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했다. 디자인진흥원은 최근 ‘산업 전환과 사회 혁신을 선도하는 미래 디자인 혁신기관’이라는 비전을 새롭게 수립했다.

▶현장 소통에 특히 신경 쓰고 계시는 걸로 압니다.

“디자인 산업 현장에 방문하면서 느낀 점이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영세한 디자인 전문기업들의 성장을 위해선 이들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는 겁니다. 현재 디자인 전문기업 대부분은 디자인 개발 용역으로만 수익을 얻고 있습니다. 하지만 디자인 용역 단가는 2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크게 오르지 않았습니다. 디자인 전문기업들은 자체 브랜드와 상품을 만들어 성장할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데,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잠재력을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디자인 전문기업들이 지금까지 쌓아온 전문성을 토대로 기획에서 디자인, 엔지니어링 등 제조 과정 전반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디자인진흥원은 디자인 전문기업들이 자체 상품 및 서비스 모델을 개발할 수 있도록 컨설팅부터 교육, 인력, 비용 지원에 힘쓰고 있습니다. 디자인 전문기업 육성 및 글로벌화 사업, 디자인 혁신 유망기업 육성사업, 디자인 온라인 제조 플랫폼 사업 등이 대표적입니다.”

▶현장 맞춤형 인력을 어떻게 확보하느냐도 디자인계의 고민거리인데요.

“산업 패러다임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지만 학교 교육 과정은 그 속도를 따라가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매년 2만 명이 넘는 디자인 전공자가 배출되지만, 이 중 기업이 원하는 디자이너는 매우 적습니다. 디자인진흥원은 전국의 우수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현장 밀착형 실무디자인 교육을 실시하고, 신기술 분야에 특화된 디자인 전문인력을 육성하고 있습니다. 현장이 필요로 하는 디자이너를 배출하기 위해서죠. 청년 디자이너들에게 실무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국내외 인턴십도 지원합니다.”

▶대표적인 인재 육성 사업을 소개해주신다면요.

“산학협력을 통해 현장에 바로 투입 가능한 실무 디자이너를 양성하는 ‘코리아디자인멤버십+(KDM+)’가 있습니다. KDM+를 통해 진행된 산학 프로젝트 결과물이 영국의 가젯쇼에 소개되는 등 KDM+ 청년 디자이너들의 실무 능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디자인 분야의 수출 전망은 어떤가요.

“디자인 산업의 수출을 위해선 우수한 우리 디자인을 세계에 알릴 자리를 마련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지난 3월 열었던 디자인 수출 활성화 간담회에서도 해외 전시 참가 지원을 확대해달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디자인진흥원은 국내 디자인 전문기업의 수출, 유통, 해외 홍보 등을 돕기 위해 선진국, 중국 및 아세안 지역에서 개최되는 다양한 해외 전시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해외 전시 참가가 기업들에 도움이 되나요.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메종&오브제’ 전시회에 국내 우수 디자인 상품을 홍보하는 한국디자인관을 운영했습니다. 33개사가 참가해 150억원 규모의 상담 실적을 거뒀습니다. 다음달엔 신흥시장 공략을 위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개최되는 ‘자카르타 국제 프리미엄 소비재전’에 한국디자인관을 구성해 참가할 계획입니다”

▶제조업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디자인을 활용할 수도 있다고 하던데요.

“디자인은 안전 문제 해결에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안전 표지판 부착, 조도 개선, 도색을 통한 작업 동선 관리 등 디자인을 활용하면 근로자가 직관적으로 위험 요소를 감지할 수 있어요. 디자인진흥원은 지난해 11월 한국산업단지공단과 업무협약을 맺고 근로자 중심의 안전사고 저감 방안을 디자인해 현장에 적용하는 안전서비스디자인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산업단지 기업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매우 좋습니다. 안전서비스디자인 사업에 참여한 대구산단 입주기업의 한 근로자는 ‘평소에 몰랐던 위험 요소를 인식하고 보호구 착용을 확인하는 등 행동의 변화를 느꼈다’고 했습니다. 앞으로는 산단뿐만 아니라 발전소, 시험소, 제철소 등 다양한 안전취약시설을 위한 안전서비스디자인을 개발할 예정입니다.”

▶올해로 디자인코리아가 20주년을 맞았습니다.

“디자인코리아는 국내 최대 디자인산업 박람회입니다. 3년 만에 코로나19 영향 없이 온전한 현장 전시 운영이 가능할 것 같아 기대가 큽니다. 실질적인 비즈니스 창출을 위해 진성 바이어 발굴과 유치에 힘쓰는 중입니다. 이미 국내외 바이어 400여 명이 참가 사전 등록을 마친 상태입니다. 디자인코리아가 코로나19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디자인 전문기업들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재도약의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최근 디자인산업의 가장 큰 흐름은 무엇일까요.

“‘친환경’과 ‘디지털 전환’ 두 가지 키워드를 꼽고 싶습니다. 제품 기획 단계에서부터 친환경 소재와 기술을 적용하는 케이스가 늘고 있습니다. 자원 절약이 가능한 제품을 설계하고, 제품의 수명을 연장하거나 재활용하는 식의 디자인 연구와 개발도 활발합니다. 디자인진흥원에서는 CMF(컬러·소재·마감) 정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탄소 저감형 디자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 친환경 노력 등을 평가해 기업을 선정하고 디자인 개선과 친환경 제품 제작을 돕고 있습니다.”

▶디지털 전환은 디자인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이젠 키워드 몇 가지만 입력하면 인공지능(AI)이 수백, 수천 가지의 디자인을 제시합니다. 이제 디자이너들은 메타버스 등 디지털 환경에서의 디자인 기술을 빠르게 습득해야 합니다. 디자인진흥원은 디자인 기업들이 상품 개발 기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AI, 메타버스 등 신기술을 활용해 상품 개발 과정에서 정보 제공, 품평, 검증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능형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디자인진흥원을 운영해나갈 계획입니까.

“디자인 업계는 디지털, 친환경 전환 등 산업구조의 근본적 변화에 대응하지 못할 경우 도태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디자인진흥원은 이런 시대적 상황을 반영해 ‘산업 전환과 사회 혁신을 선도하는 미래디자인 혁신기관’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수립했습니다. 디자인 전문기업 육성을 최우선 과제로 챙기려고 합니다. 용역 중심의 매출 구조에서 자체 디자인상품을 기획하고 생산할 수 있도록 기업들을 지원할 예정입니다. 디지털 전환 역량이 미흡한 기업을 돕고, 산업재해 등 안전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는 만큼 안전서비스디자인 사업에도 각별히 신경 쓸 계획입니다. 디자인진흥원 내부적으로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화하겠습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