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구도로 보는 '전고체 배터리'의 미래 [긱스]

입력 2022-10-25 15:42
수정 2022-10-25 15:46
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기술의 표준은 한 시대를 지배합니다. 그리고 막대한 부(富)를 창출하죠. 그 지위에 오르기까지는 치열한 경쟁이 수반됩니다. 19세기에는 전기의 표준을 잡기 위한 니콜라 테슬라와 토마스 에디슨의 경쟁이 있었고, 2000년대에는 웹브라우저 분야에서 인터넷익스플로어와 넷스케이프가 맞붙기도 했습니다. 키보드, 철도궤 역시 이 같은 경쟁의 산물입니다.
지금도 치열하게 표준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분야가 있습니다. 배터리입니다. 시장이 워낙 크다 보니 현재 표준전쟁의 ‘최대의 격전지’입니다. 김태호 유비쿼스인베스트먼트 투자본부 팀장이 한경 긱스(Geeks) 기고를 통해 전고체 배터리의 경쟁 구도를 통해 미래 승자는 누가 될지를 살펴봤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술들은 모두 라이벌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추억의 물건이 된 비디오테이프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비디오 대여점’이 치킨집 숫자만큼이나 많았던 1990년대 만해도 비디오테이프가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비디오테이프는 1976년 일본의 JVC 사가 만든 VHS라는 제품입니다. 앞서 1975년 소니가 출시한 베타맥스라는 제품이 VHS보다 1년 먼저 나왔죠. 1970년대 두 제품은 치열한 경쟁을 벌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VHS가 시장을 장악하게 되면서 베타맥스는 자취를 감춥니다. VHS는 영상기록 매체의 ‘표준’이 됐고, 우리는 지금 이 제품을 비디오테이프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치열하게 표준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분야가 있습니다. 배터리입니다. 시장이 워낙 크다 보니 현재 표준전쟁의 ‘최대의 격전지’입니다. 배터리 소재와 형태에 따른 경쟁도 치열한데, 최근에는 전고체배터리의 등장으로 더욱 표준경쟁이 뜨거워졌습니다. 전고체배터리는 현재의 배터리가 가진 한계를 상당수 극복할 수 있는 신기술입니다. 실제 많은 기업이 차세대배터리로 판단하고, 기술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전고체배터리가 뭐지?
전고체배터리의 ‘전(全)’은 한자어로 온전하다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All-Solid-State Battery라 부릅니다. 100% 고체로 이뤄진 전지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충·방전이 가능한 이차전지는 리튬이온전지입니다. 현재의 리튬이온전지는 양극과 음극, 분리막 그리고 액체 전해질로 구성됩니다. 전해질을 타고 리튬이온이 이동하면서 전기를 만들어내는 원리죠.

문제는 ‘안전성’입니다. 최근 화제가 됐던 전기차 화재 동영상을 보면 정말 순식간에 자동차가 화염에 휩싸입니다. 액체 전해질은 가연성 재료라 열폭주가 일어나면 불을 빠르게 확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작은 사고에도 큰 화재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이 존재하는 것이죠.

전고체배터리라고 해서 리튬이온과 구성성분이 다른 것은 아닙니다. 리튬이온배터리의 전해질이 고체로 구성되면 전고체배터리가 됩니다. 어떤 성분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해질이 고체면 전고체배터리입니다. 전해질이 고체가 되면 액체 전해질이 가진 문제점이 상당 부분 해결됩니다. 우선 고체전해질 자체가 불연성 재료가 사용됩니다. 또 분리막이 필요가 없어지게 되고, 내부 물질이 밖으로 흘러나올 일도 없으니 무엇보다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전해질 표준경쟁, 전고체 vs 액체
전고체배터리가 시장의 표준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의 표준인 액체 전해질 기반의 배터리를 이겨야 합니다. 많은 배터리 셀 기업들이 액체 전해질 기반으로 양산을 진행해왔기 때문에 이는 상당한 진입장벽이 됩니다. 그런데도 전고체배터리가 가진 이점이 점점 커지고 기술의 효율성이 좋아진다면 소비자들의 선택은 전고체가 될 수도 있습니다.

현재 경쟁 구도에서는 다양한 요소들이 맞붙고 있습니다. 비디오테이프 경쟁에서 VHS가 표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기록시간’이었습니다. 경쟁기술인 베타맥스는 크기도 작고 화질도 좋았지만, 1시간 내외의 녹화만 가능했습니다. 반면 VHS는 화질은 떨어지지만 2시간 녹화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점이 VHS를 표준으로 만든 주요 포인트였습니다.

배터리는 충전량, 충전 속도, 안정성 등이 중요한 평가 요소입니다. 전고체배터리는 이론상으로 이 3가지 요인에서 액체 전해질 배터리를 압도합니다. 전해질이 고체가 되면 밀도가 높아지면서 배터리 크기가 작아지고 같은 크기면 충전량이 증가합니다. 최근 KAIST와 미국 조지아 공대의 공동연구 결과를 보면 전고체배터리 1회 충전으로 전기차 주행거리가 800km까지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충전 속도도 대폭 개선됩니다. 1회 충전 시 속도가 10분 이내로 들어올 것이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온도에 민감하지 않은 점도 장점입니다. 겨울철이면 전기차 배터리 효율이 떨어지는데, 전고체배터리는 이런 부분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풀어야 할 과제도 많습니다. 전해질이 고체가 되면 이온의 이동속도가 낮아지면서 전지의 출력이 떨어집니다. 물속에서는 자유롭게 이동 가능 하지만, 사물들이 앞을 막고 있으면 이것을 치우고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이동속도가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배터리의 수명 자체가 줄어드는 점도 전고체배터리의 단점으로 꼽힙니다.

기존의 액체 전해질 기반 배터리도 점차 성능이 개선되고 있습니다. 기존의 양산체계를 변경하지 않고 양극 소재나 음극 소재를 보다 효율성이 좋은 재료들로 바꾸면 충전량, 충전 속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기술이 리튬 메탈 음극재입니다. 기존의 흑연 기반의 음극재를 리튬 메탈로 바꾸면 성능과 안전성이 훨씬 개선된다고 합니다. 리튬 메탈 배터리를 전고체배터리 형태로 개발하는 곳도 많습니다. 오히려 리튬 메탈의 특성상 전고체배터리에 더 적합하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액체 전해질 기반 배터리가 업그레이드될지 전고체배터리가 차세대전지 표준이 될지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재료의 표준경쟁, 황화물 vs 산화물
전고체배터리의 표준경쟁은 고체전해질 재료에서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고체전해질 재료는 크게 황화물계, 산화물계, 폴리머계가 있습니다. 아직 어떤 물질이 전고체배터리의 표준이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대기업과 스타트업, 연구실에서 연구되고 있는 물질의 종류가 상당히 많은 상태입니다.

황화물계의 가장 큰 장점은 이온전도도가 높다는 점입니다. 전고체배터리의 가장 큰 단점은 액체 전해질에 비해 이온전도도가 떨어지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고출력이 필요한 분야에 적용이 어렵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고체전해질 재료 중 황화물계는 다른 재료에 비해 이 이온전도도가 높습니다. 리튬이 음극에 붙어 꽃처럼 자라나는 덴드라이트 현상도 황화물계가 타 재료에 비해 적게 발생하는 편입니다. 또 황화물은 연성이 있어서 전극과 전해질 간 접촉이 비교적 쉽다는 점도 타 재료를 압도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황 자체가 물과 반응하면 황화수소라는 유독가스가 발생해 제조과정에서 독성물질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은 황화물계 재료의 치명적 단점으로 꼽힙니다.

산화물계는 황화물계가 가진 안전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황화물과 달리 연성이 없어서 전해질과 전극의 접촉이 어렵습니다. 이 계면 저항이 높다는 것은 고출력과 빠른 충전에 방해가 되는 요소입니다. 그래서 산화물계 전고체배터리에는 1,000°C 이상의 고온소결 과정이 들어가야 합니다. 고온으로 전해질과 전극의 접촉을 높여주는 것이죠. 양산 과정 자체가 크게 바뀌게 됩니다. 또 고온소결 과정에서 다른 부재료들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점도 단점으로 꼽힙니다.

폴리머계는 산화물계와 황화물계와 섞어서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형태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폴리머계와 다른 재료를 적층 구조로 쌓아 전극 부위에서 발생하는 덴드라이트나 계면 저항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구조입니다. 공정 부분에서도 기존의 배터리 공정을 대부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힙니다. 반면 황화물이나 산화물에 비해 이온전도도가 낮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됩니다.
기업들은 전고체배터리 주도권 경쟁
업계에 따르면 현재 전고체배터리 연구를 진행 중인 글로벌 기업은 총 54개 사입니다. 각 기업은 고체전해질 재료 표준을 정하고 여기에 맞는 배터리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현재 기술적으로 가장 앞서가고 있는 분야는 황화물계입니다. 특히 일본이 이 황화물계 분야에 상당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배터리 경쟁에서는 한국에 밀렸지만, 전고체배터리로는 주도권을 잡겠다는 것이 일본의 전략입니다.

실제 도요타는 2000년대 초반부터 황화물계 기반 전고체 전지 연구를 시작했고 2,000여건의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현재 글로벌 전고체배터리 연구의 선두 주자입니다. 미국에서는 솔리드파워가 황화물 기반의 전고체배터리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이 황화물계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삼성SDI는 2027년을 양산 목표로 잡고 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황화물계와 폴리머계를 모두 개발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오는 2026년까지는 폴리머계, 2030년까지는 황화물계로 상용화에 나선다는 방침입니다.

산화물계 대표주자는 미국의 퀀텀스케이프입니다. 글로벌 자동차업체 폭스바겐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투자한 곳으로 유명세를 탔고 현재는 나스닥에 상장된 회사입니다. 대만의 프롤로지움, 일본의 무라타-소니도 산화물계 기반 전고체배터리를 개발 중입니다.

현대차와 SK, 포스코는 글로벌 전고체 기업 투자를 통해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현대차는 미국 전고체배터리 업체인 솔리드에너지시스템(SES)과 솔리드파워에 투자했습니다. 솔리드에너지시스템은 SK로부터도 투자유치를 받았죠. 포스코는 대만의 프롤로지움에 투자한 상태입니다.

국내에는 스타트업 중에서도 전고체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는 곳이 많습니다. 솔리비스는 황화물계 기반의 전고체 전해질을 개발하고 있고, 지난해 벤처캐피털로부터 시리즈A 투자유치를 받았습니다. 티디엘은 산화물계 기반의 전고체배터리를 개발하고 있으며 최근 양산체제까지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고체배터리, 단일표준으로 살아남을까
전고체배터리의 세계적인 석학인 간노 료지 일본 도쿄공업대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작은 칩형의 웨어러블기기에는 산화물계, 전기차 등에는 황화물계가 사용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VHS가 베타맥스를 100% 대체했던 것과 달리 산화물과 황화물은 각기 알맞은 분야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액체 전해질 기반의 배터리도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신기술들이 지속적으로 개발 중이니 전고체배터리가 100% 액체 전해질 기반 배터리를 대체하는 것도 아직은 이른 판단 같습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서 볼 때 배터리 표준전쟁은 교류(AC)와 직류(DC)의 경쟁과 유사한 양상으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교류와 직류는 오랜 기간 공존하면서 교류로 점자 대체되어 갔습니다. 여기에는 교류를 직류로 바꿔주는 컨버터 기술들이 유효하게 작용했습니다. 사용자가 달라도 두 기술은 경쟁 속 공존을 지속합니다. 애플과 구글의 모바일 운영체제가 지금 그렇게 공존하고 있는 상태죠.

글로벌 전고체배터리 시장 규모는 2027년 4억8250만달러(한화 약 6900억원)로 추정됩니다.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 규모가 2025년 191조원 정도로 예상되니 전체 사이즈로 보면 크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현재 기술 수준이 초입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전고체배터리에 대한 관심이 큰 이유는 이 배터리 표준이 지금의 배터리 시장을 크게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지속될 배터리 표준 전쟁에 대응하는 기업들의 전략을 살펴보면 보다 빠르게 미래를 그릴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김태호 | 유비쿼스인베스트먼트 투자본부 팀장
신기술사업금융전문회사인 유비쿼스인베스트먼트에서 스타트업 투자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산업 영역에서 일어나는 혁신을 관찰하고, 이를 주도하는 스타트업을 발굴해 성장 마중물을 공급합니다. 그래서 매일 스타트업을 만나 혁신적인 트렌드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일이 즐겁습니다. 한국경제신문에서는 벤처캐피털의 투자와 스타트업의 성장 스토리에 대한 기사를 썼습니다. 여러 경험에서 쌓은 넓고 얕은 지식이지만 스타트업 성장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위해 매일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