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웹툰 시장의 규모는 한해 1조원이 넘는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2013년 1500억원이었던 시장 규모는 2020년 1조538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 1조원을 넘었다. 웹툰은 매년 30% 이상 성장하며 'K-컬쳐'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시장이 성장하면서 고소득 작가가 나오자 지망생이 몰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네이버웹툰 작가의 평균 연간 수입은 2억8000만원에 달했고 상위 20명 작가의 평균 연 수입은 17억5000만원을 기록했다. 최고 수익을 올린 작가는 무려 124억원을 벌었다. 네이버 예비 작가는 15만명을 넘어섰다.
이같은 웹툰 시장의 폭발적 성장에 수혜를 입은 회사가 있다. 타블렛 전문 기업 와콤이다. 와콤은 1983년 일본에서 시작돼 40여년의 업력을 가진 준 장수기업이다. 펜 타블렛, 액정 타블렛, 디지털 인터페이스 등을 바탕으로 디지털 예술, 영화, 특수 효과, 패션 등 전세계 곳곳의 디자인 작업 현장에서 쓰이며 업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주형 한국와콤 대표는 25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술력을 강조했다. 그는 "타블렛 전자펜에 사용되는 EMR(Electro Magnetic Resonance) 기술을 와콤이 독자 개발했다"며 "삼성의 S펜도 와콤의 EMR 기술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EMR은 스크린에서 내보내는 자기장과 펜 사이에서 발생하는 전자기유도에 의한 공명을 감지해 신호를 주고 받는다. 펜에 배터리를 넣을 필요가 없어 무게가 가볍고 정밀한 터치감을 선보인다.
와콤의 대표 제품으로는 펜 타블렛과 액정 타블렛이 있다. 펜 타블렛은 사각형의 판과 같은 기기에 디지털 펜을 사용할 수 있는 기기다. 액정 타블렛은 스크린 위에 바로 디지털 펜 사용이 가능한 제품이다. 특히 와콤의 액정 타블렛은 기안84, 주호민, 박태준, 야옹이, 전선욱, 윤태호, 강풀, 조석 작가 등 국내 톱 웹툰 작가들이 이용하는 장비로 입소문을 타면서 지망생들의 필수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프로용 기기는 대당 200~300만원을 호가한다.
김 대표는 "프로 작가들 시장은 와콤이 거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다"며 "이들은 하루에 10시간 이상 한 자리에 앉아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장시간 작업할 수 있는 자세, 펜의 그립감, 눈 보호 기능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실제 와콤은 자체적으로 구축한 작가 커뮤니티를 통해 피드백을 받아 요구 사항을 제품에 반영한다. 작가들을 위한 '커스터마이징'인 셈이다.
프로 작가들 사이에선 와콤 제품이 아니면 웹툰을 그릴 수 없다는 말도 나온다. 저가형 제품이 있지만 작업 시간이 늘어나 효율성이 저하되고 미세한 그림체 차이도 구현할 수가 없다는 것. 안정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작가들에게 와콤의 타블렛은 '신체 일부'로 여겨진다. 사실상 우리나라 톱 웹툰 작가들이 그리는 그림 100%가 전부 와콤 타블렛으로 그렸다고 봐도 무방하다.
김 대표는 "최근 10년 간 글로벌 시장에서는 매출이 연평균 8% 정도 꾸준히 증가했다"며 "한국은 이보다 더 높은 11%의 매출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와콤 본사의 매출은 연결기준 1100억엔(한화 약 1조1000억원) 정도 기록했고, 한국에선 5~6년 전부터 매출 증가세가 두드러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대표는 "모든 산업들이 디지털화되다보니 웹툰 뿐만 아니라 동영상, 사진, 건축, 패션, 산업, 자동차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와콤 타블렛이 사용되고 있다"며 "매년 두자릿수 매출 증가율을 기록하리라 예상하지 못했다"고 놀라워했다.
한국의 '웹툰 종주국' 지위를 지키기 위해 와콤은 더 강력한 웹툰 생태계 구축에 힘을 보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 대표는 "네이버와 카카오과 전 세계를 대상으로 웹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창작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웹툰 작가 유입을 위해 소프트웨어 제조사 셀시스와 손잡고 웹툰 창작에 최적화된 툴 개발에도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