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카드 단말기 개발자가 만든 결제 앱…비자·마스터도 줄섰다 [긱스]

입력 2022-10-26 03:00
수정 2022-12-05 16:35

퀵서비스 배달을 받거나 전통시장, 간이 매장 등에서 카드로 결제할 때면 휴대용 무선 카드 단말기를 보게 된다. 작은 키패드와 화면, 카드를 꽂거나 긁을 수 있는 인식 장치 등이 달린 기기다. 이런 휴대용 카드 단말기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상용화한 곳은 바로 한국이다. 1997년 케이블 타입의 무선 카드 단말기가 처음 나온 뒤 1999년엔 한국정보통신(KICC)에서 모뎀을 기기 안에 넣은 카드 단말기를 출시했다. 지금도 가장 많이 쓰이는 무선 카드 단말기의 원형이다.

소비자는 이제 실물 카드 없이 스마트폰만 있으면 모바일 페이, 앱카드 등으로 얼마든지 카드 결제를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판매자들은 여전히 이 묵직한 카드 단말기가 없으면 카드 결제를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판매자를 위한 결제 서비스는 20여년 간 이렇다 할 발전이 없었던 셈이다.

이런 와중에 스마트폰 앱 하나로 모든 결제를 처리할 수 있는 판매자용 간편결제 솔루션으로 게임체인저를 자처하고 나선 핀테크가 있다. 2015년 설립된 핀테크 기업 '페이콕'이 그 주인공이다. 페이콕은 최근 별도 카드 단말기나 POS(판매시점관리시스템) 장비 없이 스마트폰에 신용카드를 갖다대거나 카메라로 카드를 인식하는 것만으로 결제가 완료되는 서비스 '페이콕 에어'를 출시했다.

페이콕 에어는 근접무선통신(NFC) 기능과 광학문자판독(OCR) 기술, QR코드 인식 등을 모두 활용해 어떤 형태의 결제도 스마트폰 하나로 3초 안에 처리한다. 판매자는 자신의 스마트폰에 페이콕 에어 앱을 깔기만 하면 된다. 스마트폰·태블릿PC 운영체제나 제조사, 기종 등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처음 한 번 부담하는 초기 등록비와 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제외하면 별도 비용도 들지 않는다. 영세 자영업자도 비싼 카드 단말기 비용과 며칠씩 걸리는 등록 절차 없이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카드 결제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서울 광진구 페이콕 본사에서 만난 권해원 페이콕 대표는 "방문 판매원이나 배달 대행 종사자, 전통시장 상인 등 누구나 별도 기기 없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결제 환경을 제공할 것"며 "750만 소상공인에게 페이콕이 필수 플랫폼이 되도록 서비스를 확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세계 첫 무선 카드단말기 개발자가 '단말기 없는 결제서비스' 개발자로 '카드 단말기 없는 카드 결제 환경'을 꿈꾸는 권 대표는 사실 카드 단말기 업계에서 손꼽히는 유명인사다. 지금 우리가 쓰는 휴대용 무선 카드 단말기를 개발한 사람이 바로 권 대표이기 때문이다.


국산 카드 단말기가 없던 시절 수입 단말기를 수리하는 밴(VAN)사 엔지니어로 금융업계에 처음 발을 들인 그는 1997년 세계 최초 무선 카드 조회기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판매가가 100만원이 넘는 초고가 기기였는데도 초도 물량만 5000대가 판매되며 '대박'을 쳤다. 그가 1999년 개발한 지금과 같은 형태의 무선 카드 단말기는 출시 한 달 만에 1000만 달러 어치가 수출됐다. 지금도 무선 카드 단말기 제조 분야의 세계 1위는 한국이라고 한다.

권 대표는 "판매자 입장에서 불편하고 고쳐야 할 점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다 보면 답이 보인다"며 "페이콕 서비스 역시 별도 단말기가 없는 결제 수단에 대한 수요가 계속 있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지난 20여년 간 카드 단말기는 크기를 좀 더 작게 줄이거나 통신 방법을 블루투스로 바꾸는 정도의 개선밖에 이루어진 게 없습니다. 아쉬운 일이죠. 누구나 들고 다니는 전화기, 스마트폰만 있으면 결제를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오랫동안 고민한 결과가 페이콕입니다." 설립 8년 만에 첫 정식 서비스 출시까지페이콕은 올해로 설립 8년차다. 스타트업이라고 하기엔 업력이 길지만 정식으로 서비스를 출시하는 것은 이번 페이콕 에어가 처음이다. 작년까지는 사실상 시한부 신세였기 때문이다.

페이콕은 지난 2015년 모바일 단독 카드 결제 솔루션을 개발해 창업했다. 특히 페이콕은 스마트폰 내 해킹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안전 공간인 ‘트러스트존’에 보안키를 저장해 보안성을 극대화했다. 모바일 단독 간편결제 솔루션 업체 가운데 트러스트존에 보안키를 저장하는 기술을 개발한 곳은 페이콕이 세계 최초다.

하지만 '하드웨어 장비로만 IC카드를 승인해야 한다'는 당시 여신전문금융업법 규제에 걸려 서비스 출시는 하지 못했다. 페이콕 서비스가 국내 시장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2019년 금융위원회 혁신금융서비스에 지정되면서다. 창업 후 4년 10개월 만이다.

이후 시범 서비스 자격만 3년 가까이 이어오다 작년 말 여전법 관련 규정이 개정되면서 마침내 합법적인 서비스 출시가 가능해졌다. 페이콕은 개정된 법에 따라 별도 하드웨어 장비 없이 스마트폰만으로 카드 단말기 서비스를 할 수 있는 1호 업체다.

권 대표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보안성·혁신성 인정을 받고 투자 제의도 많이 받았지만, 시범 기간에는 언제든 서비스가 중단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4년 넘게 대규모 투자 유치는커녕 서비스 정식 판매도 못 했다"고 했다. 그는 "그럼에도 서비스의 편리함을 경험한 자영업자 사이에 입소문을 타면서 가맹점 3만3000개를 확보했다"며 "규제가 개선되고 정식 서비스 출시가 가능해지자 그동안 제휴나 투자를 원하던 국내외 업체들과도 논의가 활발하게 진전되고 있다"고 했다.

그 첫 결실이 삼성전자의 지원을 받은 것이다. 삼성전자는 페이콕의 보안 기술을 높이 평가해 갤럭시 자급제 스마트폰 제조 과정부터 자체 보안 플랫폼인 '녹스'의 트러스트존에 페이콕의 보안키가 저장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에 따라 11월부터 제조되는 갤럭시 스마트폰·태블릿 자급제 모델에서는 별도 최적화 과정 없이 소비자가 페이콕 에어 앱을 바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내년부터는 해외 시장 공략에도 나선다. 페이콕은 글로벌 결제 대행기업인 파이서브코리아, 비자와 이미 제휴를 맺었고 마스터카드와도 협력을 논의 중이다. 권 대표는 "규제가 개선되고 합법 서비스가 되자마자 해외 업체들의 제휴 논의가 들어오고 있다"며 "해외 NFC(근거리무선통신) 결제를 위한 EMV(유로페이, 마스터카드, 비자카드가 만든 국제결제 표준) 인증을 마무리하는 내년 2분기부터는 해외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750만 소상공인의 '필수템' 되겠다"페이콕은 페이콕 에어 가맹점(이용자)을 3년 내 최소 200만 곳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서비스가 정식 출시되기 전부터 선계약을 맺은 가맹점만 벌써 100만 곳에 이른다.

권 대표의 최종 목표는 페이콕을 영세 소상공인을 위한 종합 B2B 플랫폼으로 만드는 것이다. 식자재 공동구매, 사업장 화재보험, 긴급 단기자금 대출, 인력 중개 등 사업자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페이콕 안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부다.

결제 솔루션은 이런 플랫폼을 위한 첫 발걸음에 불과하다. 현재 투자 유치 작업에 한창이라는 권 대표는 "안정적인 투자가 이뤄지면 결제 솔루션은 누구나 무료로 쓸 수 있는 무상 서비스로 영구 공급하고 싶다"고 했다. 단순 결제 사업자가 아닌 플랫폼 사업자가 목표이기 때문이다.

권 대표는 "한국 750만 소상공인에게 페이콕이 '필수 아이템'이 되도록 만드는 게 꿈"이라고 했다. "페이콕으로 결제를 받으면 매일 수시로 앱을 열어봐야 하잖아요. 플랫폼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죠. 그렇게 페이콕에 들어올 때마다 판매자가 필요한 모든 것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공동구매부터 금융까지 모든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