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산업 장벽' 규제 깨자…'바다 위 테슬라' 탄생

입력 2022-10-24 18:16
수정 2022-10-25 00:54

친환경 선박 제조업체 빈센의 이칠환 대표는 2019년 창업 후 전기로 구동하는 선박 제조에 시동을 걸었다. 대우조선해양 엔지니어 출신으로서 노하우를 살려 전기 선박 개발엔 성공했지만, 사업화는 요원했다. 파도와 바람 등 저항이 커 운항 거리가 1시간가량에 그친 탓이다. 연구 끝에 ‘수소연료전지가 정답’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법·제도 때문에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었다. 24일 한국경제신문과 만난 이 대표는 “자동차와 달리 수소 선박 제조에 관한 법이 없어 수소 선박을 만들면 불법을 저지르는 꼴이었다”고 돌아봤다.

풀릴 것 같지 않던 실타래는 울산이 수소그린모빌리티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되면서 단번에 해결됐다. 규제자유특구는 수도권 이외 지역의 혁신성장과 균형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규제를 해소해 지역의 혁신사업 또는 전략산업을 지정·운영하는 제도다. 전국 32곳 특구에서 세종시(자율주행), 대구시(이동식 협동 로봇) 등 지역별로 세분화한 혁신·전략산업을 두고 있다.


빈센은 관련 법 없이도 울산 특구에서 수소전기보트 ‘하이드로제니아’의 실증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사업에 탄력이 붙었다. 정부의 ‘혁신기업 국가대표 1000’에 선정되고 벤처캐피털(VC)로부터 145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도 유치했다. 작년 9월 열린 ‘규제자유특구 챌린지’에서 대상까지 거머쥐며 소위 ‘바다 위 테슬라’로 급부상했다. 이 대표는 “특구 제도 덕분에 아이디어를 현실화했다”며 “싱가포르 대기업에도 조만간 선박용 수소연료전지를 수출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빈센이 수상하며 해외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한 규제자유특구 챌린지는 신사업의 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규제와 규제 혁신사업 아이템을 발굴하는 공모전이다. 지역 예선을 통과하면 비즈니스모델(BM) 개선 등 사업 계획 고도화를 지원받는다. 본선 진출 기업에는 최대 5억원의 정책 자금을 제공한다. 올해 규제자유특구 챌린지는 26~2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다. 국민 누구나 평가단에 등록한 뒤 본선 진출 과제에 사전 투표할 수 있다.


모토벨로는 지난해 챌린지 본선에 진출해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상을 꿰찬 곳이다. 전남 e모빌리티 규제자유특구에서 페달 없이 전기 모터로만 작동하는 ‘스로틀 방식’의 전기자전거 실증 사업을 통해 모터 출력 관련 규제 개선을 끌어냈다. 이종호 모토벨로 대표는 “기술표준원과 실증을 마친 덕분에 현재 350W인 전기자전거 모터 출력이 오는 12월 500W로 개선 되게 됐다”고 반겼다. 그는 “국내 도로의 30~40%가 산악 지형이어서 페달링이 힘든 자전거 취약계층의 이동에 350W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며 “스로틀 방식의 전기자전거를 통해 모빌리티 혁신에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빈센과 모토벨로 등이 연이어 성과를 내면서 규제자유특구는 신산업 걸림돌 규제 완화와 규제 공백 분야 등의 최초 실증을 통한 사업화 테스트베드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다. 2019년 7월 첫 특구 지정 이후 2998개(올해 8월 말 기준)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특구 지역 내 총 273개 기업을 신규 유치했다. 총 2조8806억원의 공장·설비 및 VC 투자를 끌어내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