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완화하려 경쟁적으로 금리를 인상하는 가운데 효과를 확인하는 데에 최소 2년이 걸릴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통화정책의 파급효과가 실물 경제에 도달하는 시차가 나타나서다.
2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국제통화기금(IMF)의 10월 세계 경제 전망을 인용해 금리 변화가 경제성장률에 영향을 미치는 데 1년이 걸리고, 인플레이션을 잠재우는 데에는 3~4년이 소요될 거라고 진단했다.
과거에도 통화정책과 실물경제에 시차가 났다. 미국 중앙은행(Fed)을 이끌던 존 볼커 전 의장은 1979년 기준금리를 20%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미국 경제는 곧장 침체 국면에 돌입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은 3년이 지난 뒤에 완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시차가 발생하는 이유는 통화 정책이 시장에서 단계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조절하는 단기 대출금리는 즉각적으로 바뀌지만 가계 대출과 기업 대출 금리가 변경되는 데엔 시간이 걸린다. 계약을 갱신할 때까지 여유 기간이 남아있어서다.
금리가 올라가도 실물경제에 도달하는 데에도 수개월이 걸린다. 높은 이자율 탓에 가계와 기업이 대출 규모를 축소해도 실제 계획을 수정하는 게 수월하지 않아서다. 가계 입장에선 위약금을 감수하면서 부동산 및 자동차, 인테리어 계획 등을 곧장 취소하기 어렵다. 기업도 채용 계획이나 대형 프로젝트를 순식간에 철회하긴 힘든 상황이다.
통화정책과 실물경제에서 빚어진 시차는 여러 차례 연구된 바 있다. 2013년 체코 중앙은행은 선진국의 경우 금리가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주려면 최소 2년 이상 소요된다고 분석했다. 영국중앙은행과 독일연방은행이 2016년 공동으로 연구한 결과 기준금리가 1%포인트 인상될 경우 2~3년 뒤에 생산량이 0.6%포인트 축소되고 인플레이션이 1%포인트 감소했다.
올해 금리를 빠르게 인상해도 정책의 결과를 곧장 확인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급격히 불어난 통화량도 통화 정책 효과를 반감시킨다. 지난 2년간 벌어진 재정확장과 양적완화 정책으로 인해 경제가 쉽게 냉각되진 않을 거란 설명이다.
애틀랜타 연방은행에 따르면 미국 경제는 올해 6~9월 약 3%가량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JP모건도 에너지 비용이 급증해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경제성장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미국의 실업률도 아직 4%를 밑돌며 순항하고 있다.
통화정책과 실물경제의 괴리가 중앙은행을 흔들거라는 경고가 나온다. 경기 침체 우려가 증폭되면서 이른 시점에 통화 긴축 정책을 중단할 거란 설명이다. 인플레이션이 완화되기에 앞서 실업률이 치솟고 소비가 둔화하기 시작하면 정치권에서 중앙은행을 압박한다. 침체에 관한 불안이 점점 커지게 되면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에 도달하기 전에 정책을 철회하게 될 수 있다.
Fed에서 가장 강경한 매파(통화 긴축 찬성론자)로 알려진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는 지난 19일 “인플레이션이 식으면서 작은 폭의 금리 조정으로도 충분히 경기 제약적으로 유지하는 방식으로 통화정책이 전환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Fed의 위원을 역임했던 스티븐 세체티 브랜다이스 경영대학원 교수는 “현재 가장 큰 위험은 Fed가 경기침체 공포를 못 이겨 통화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1976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밀턴 프리드먼 교수가 주창한 ‘샤워실의 바보들’이 될 거란 경고다. 샤워실에 들어가 더운물(양적완화)을 틀면 금세 뜨거운 물(인플레이션)이 쏟아진다. 뜨거움에 질겁해 곧장 찬물(통화 긴축)로 수도꼭지를 돌린다. 차가운 물에 놀라 다시 뜨거운 물을 틀게 되고 이를 반복한다. 물(자원)만 낭비하고 정작 샤워(경제 목표)는 하지 못한다.
완전고용과 인플레이션 억제를 꿈꾸며 수도꼭지를 급격히 조종하는 Fed가 실제로는 침체와 실업, 양극화를 심화하는 걸 두고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