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수준의 보급률(80% 이상)을 자랑하는 한국의 디지털 도어록이 정작 글로벌 시장에서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충전이 가능한 2차전지 사용을 금지한 낡은 규제가 스마트홈 산업 경쟁력 약화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23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양향자 의원(무소속)에 따르면 2007년 산업통상자원부가 제정한 ‘전기생활용품안전법 시행규칙 부속 안전기준’은 디지털 도어록 주 전원으로 건전지 또는 어댑터의 직류전원만 쓰도록 했다. 이에 따라 대용량 리튬이온 전지 등 2차전지는 도어록에 사용이 불가능하다. 국내 대부분의 도어록이 AA건전지 4~8개를 교체 사용하는 방식을 택한 이유다. 스마트폰과 전기차는 물론 무선청소기 등 생활 속 전자제품에 2차전지 사용이 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 같은 규제 때문에 도어록에 블랙박스(보안 카메라)나 원격제어 등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접목한 신제품 출시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건전지만으로는 이런 첨단 기능이 요구하는 전력 사용량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마트홈 성장성을 눈여겨보고 지난 7월 삼성SDS 홈IoT 사업부를 인수한 부동산 스타트업 직방도 IoT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도어록 개발을 시도하고 있지만 규제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과 미국, 유럽 등 해외엔 이런 규제가 없다. 2차전지를 채용해 다양한 IoT 기술을 접목한 도어록도 이미 등장했다. 중국 샤오미가 출시한 도어록에는 보안카메라, 스피커, 얼굴인식, 원격제어 등 기능이 적용돼 있다. 그만큼 한국산 디지털 도어록의 시장 경쟁력은 뒤처지고 있다. 2018년 3467만달러였던 한국의 대(對)중국 디지털 도어록 수출액은 2020년 796만달러로 2년 새 77% 급감했다. 세계시장 수출액은 2017년 1억1918만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8238만달러를 기록하는 등 감소세가 뚜렷하다. 중국산 도어록을 ‘직구’해 설치하는 국내 소비자도 늘고 있다. 이미 국내 주요 오픈마켓에는 2차전지를 쓰는 샤오미 도어록이 버젓이 팔리고 있다.
국가기술표준원 등 소관 기관은 안전성을 이유로 규제 완화를 반대하고 있다. 화재 시에 도어록이 정상 작동하려면 270도의 고온에서도 폭발이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데, 2차전지는 160~170도에서 폭발이 나타난다는 것이 국가기술표준원 설명이다.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는 “국제시장 경쟁력 문제는 2차전지를 채용한 제품을 해외에만 출시하면 해결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이에 업계에서는 “자국 판매 실적이 없는 제품을 해외 소비자들이 사용할 리 만무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