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 아이언 부활…제2 전성기 맞은 리디아 고

입력 2022-10-23 17:54
수정 2022-10-24 00:18

‘천재 소녀’에서 ‘골프 천재’로 부활한 리디아 고(25·뉴질랜드)가 한국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대회에서 우승하며 투어 통산 18승을 달성했다. 지난 1월 게인브리지 LPGA 이후 9개월 만에 거둔 시즌 2승이자 고국에서 올린 첫승이다.

리디아 고는 23일 강원 원주 오크밸리CC(파72·6647야드)에서 열린 LPGA투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에서 버디 8개를 몰아치는 맹타를 휘둘렀다. 여기에 보기 1개로 막으며 하루 만에 7타를 줄여 최종합계 21언더파 267타를 쳤다. 2위 안드레아 리(24·미국)를 4타 차로 여유 있게 따돌리며 완승을 거뒀다.

리디아 고의 이름에는 언제나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10대 시절 이미 세계를 평정한 천재 소녀였다. 서울에서 태어나 여섯 살에 뉴질랜드로 건너간 골퍼로 세계 최연소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다. 10대 시절에만 14승을 거뒀고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는 뉴질랜드에 귀한 은메달도 안겼다.

하지만 이후 긴 슬럼프에 빠졌다. 그는 묵묵히 힘든 시간을 견디며 자신의 때를 기다렸다. 새 코치 숀 폴리와 손을 잡았고, 체력을 키우기 위해 근육량을 7㎏ 가까이 늘렸다. 그가 세상에 ‘천재의 부활’을 다시 알린 건 지난해다. LPGA투어 롯데챔피언십에서 3년 만에 통산 16승을 올렸고, 8월 도쿄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따냈다.

리디아 고는 장타자는 아니다. 이날 비거리는 239야드로 LPGA 투어 평균 수준을 기록했다. 하지만 자신의 장기인 정확도 높은 플레이로 추격의 여지를 모두 차단했다. 페어웨이는 단 3개 홀에서만 놓치며 페어웨이 안착률 79.6%를 기록했다. 아이언샷 정확도를 보여주는 그린 적중률은 100%였다. 아이언샷으로 공을 그린에 올리면서 모든 홀에서 버디 찬스를 만들어냈다는 뜻이다. 이렇게 만들어낸 기회를 놓치지 않고 8개의 버디를 엮어냈다. 최고 전성기였던 10대 시절의 ‘컴퓨터 플레이’를 다시 한번 선보인 날이었다.

이번 대회는 리디아 고에게 여러모로 의미가 남다르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가 고국에서 거둔 첫 우승이다. 그는 2013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대회인 스윙잉 스커츠 월드 레이디스 마스터스에서 우승했지만 당시 대회는 대만에서 열렸다. 오는 12월로 예정된 결혼을 자축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는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의 아들 정준 씨(27)와 부부의 연을 맺는다.

한국 선수들은 이번 대회에서도 우승을 놓치면서 최근 LPGA 투어 13개 대회 연속 무승 기록을 이어갔다. 최혜진(23), 김효주(27)가 막판까지 선전했지만 리디아 고의 기세를 꺾지 못했다. 이들은 최종합계 16언더파 공동 3위로 대회를 마쳤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