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헤르손 전황 악화에 또 긴급대피령…우크라에 대대적 공습

입력 2022-10-23 14:04
수정 2022-11-21 00:01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 점령지에 있는 주민들에게 즉각 떠나라는 긴급 대피령을 선포했다. 수세를 이어가던 러시아군은 전력 및 상수원 등을 공습하며 반격에 나섰다.

러시아가 임명한 헤르손 점령지 행정부는 22일(현지시간) “헤르손의 모든 민간인은 즉각 도시를 떠나 드니프로강 왼쪽(동쪽) 둑으로 건너가야 한다”며 “전선의 긴박한 상황, 도시에 대한 대규모 포격 위험 증가, 테러 위협 상승으로 모든 민간인은 즉시 도시를 떠나야 한다”고 발표했다. 헤르손 점령지 행정부는 모든 산하 부서·부처에도 이날 중으로 드니프로 강을 건너라고 명령했다.

헤르손은 우크라이나 드니프로 강 하구에 위치한 크림(크름)반도의 관문이다. 러시아가 합병을 선언한 4개 점령지 중 하나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의 반격에 지난달 말 동부 요충지 리만을 빼앗긴 데 이어 남부 점령지인 헤르손에서도 열세에 몰렸다.

러시아군은 헤르손에 거주하는 친 러시아계 주민 약 6만명을 재배치하는 등 우크라이나의 반격에 맞서 배수진을 쳤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은 최근 몇 주간 드니프로 강 서쪽 기슭을 따라 마을과 농지 등을 점령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헤르손을 향한 진격을 지속했다. 수복이 예상되자 헤르손 점령 당국이 주민들에게 이날 모두 떠날 것을 긴급히 명령했다고 로이터는 보도했다.

러시아는 대피를 위해 드니프로 강에 대형 바지선 교량을 구축했다. 영국 국방부는 “러시아군이 드니프로 강을 건너는 도강 지점들을 보강하는 일을 지속하고 있다”며 “손상된 헤르손의 안토니우스키 대교 옆에 바지선 교량을 완공했다”고 밝혔다.

안토니우스키 대교는 헤르손 지역을 동에서 서로 관통하는 약 1㎞ 길이의 다리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헤르손을 점령한 2월부터 수송과 보급 등의 전략적 핵심 인프라로 불린다.

지난 7월 우크라이나군 로켓 공격으로 다리는 크게 파괴됐고, 러시아군 복구작업과 우크라이나군 공격이 반복되며 통행이 불가능한 상태다. 영국 국방부는 “민간 바지선을 이용하는 게 자재와 운송 면에서 러시아에 장점이 있을 것”이라며 “러시아는 침공에서 교량 설치를 위한 군사 장비와 공병 인력의 상당량을 잃은 상태”라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가 공세를 강화하는 가운데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전역에 무차별 공습을 이어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의 대규모 미사일 공격을 규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러시아가 밤사이 36발의 미사일을 쏘며 대대적인 공습을 시작했다. 발사된 로켓은 대부분 격추됐다"며 "이번 공습은 중요 기반 시설에 대한 사악한 공격이며 전형적인 테러리스트 전술"이라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 공군도 이날 성명에서 "주요 기반 시설을 겨냥한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이 시작됐다"고 전했다. 이날 남부 오데사 지역과 서부 및 중부 권역 6개 주에서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습을 받았다는 보고가 올라간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의 공습이 전력 기반 시설에 집중되면서 전국적으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고 AFP가 전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날 우크라이나에서 100만 가구 이상이 정전됐다.

남·동부 전선에서 점령지를 빼앗기는 등 수세에 몰린 러시아군이 최근 우크라이나의 전력 시설을 주요 공격 목표로 삼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크라이나 전력과 난방, 물, 가스 등 필수 끊어 한겨울에 우크라이나인들을 고통에 몰아넣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우크라이나 국영 전력회사 우크레네르고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 주요 네트워크의 에너지 시설에 대해 미사일 공격을 또 감행했다"고 전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