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은 ‘이전을 통해 새 역할을 하라’는 정부 임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지난 20일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 산은의 부산 이전에 대한 강석훈 산은 회장의 발언이다. 서울 여의도 산은 본점의 부산 이전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새 정부 국정과제다.
앞서 11일 열린 국감에서 전북 전주에 본사를 둔 국민연금공단은 정반대 취지의 계획을 밝혔다.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은 기금운용본부 서울사무소를 설치할 계획이 있냐’는 질문에 “(내년 재정계산과 함께 이뤄지는) 기금운용발전위원회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산은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자본시장에 자금을 공급하는 대표적 출자기관이다. 그런데 비슷한 두 기관을 두고 한쪽에선 ‘내려가야 한다’, 다른 쪽에선 ‘올라가야 한다’는 정반대 얘기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국민연금법 27조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고 말한다. 이 법 조항엔 ‘기금이사가 관장하는 부서의 소재지는 전라북도’라는 규정이 있다. 수많은 공공기관 관련 법 중 본사가 아닌 하위 부서의 소재지를 특정한 것은 이 법뿐이다. 이 규정은 2012년 대선의 산물이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기금운용본부만큼은 공공기관 이전 대상에서 제외했다. 서울을 글로벌 금융허브로 만들기 위해선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기능이 서울에 남아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산은 등 국책은행이 서울에 남은 것도 같은 취지였다.
하지만 당시 문재인 후보가 대선 공약으로 기금운용본부의 전주 완전 이전을 꺼내 들면서 이 같은 기조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지역 표심 잡기가 급해지자 처음엔 반대했던 박근혜 후보도 선거 막판 찬성으로 돌변했다. 그리고 이듬해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여야 합의로 통과되면서 기금운용본부의 전주행엔 ‘대못’이 박혔다.
결과는 눈에 보는 그대로다. 국민연금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연기금이란 타이틀에도 ‘일류’가 되지 못하고 있고, 2012년 세계 6위까지 올랐던 서울의 국제 금융경쟁력은 10위권으로 내려앉았다. 공단이 지방에 있어 인재들이 근무를 꺼리는 데다 자본시장 관계자들의 접근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 연기금 최고투자책임자는 “노무현·이명박 시절보다도 국가의 금융 경쟁력에 대한 철학이 빈곤하다”고 일갈했다. “국정과제라서 부산으로 이전한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는 강 회장이 곱씹어볼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