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숙인 SPC 회장…위기관리 프로세스 작동했나

입력 2022-10-21 17:39
수정 2022-10-22 01:35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엄중한 질책과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결국 머리를 숙였다. 계열사 SPL의 경기 평택시 제빵공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한 사고가 일어난 지 6일, 윤석열 대통령이 “사업주나 노동자나 서로 상대를 인간적으로 살피는 최소한의 배려는 하면서 우리 사회가 굴러가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질타한 지 하루 만이다.

허 회장은 “고인 주변에서 함께 일했던 직원들의 충격과 슬픔을 회사가 먼저 헤아리고 배려하지 못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인간적인 존중과 배려의 기업 문화를 정착시키겠다”고 덧붙였다. 회사 측은 전사적인 안전관리 강화를 위해 3년간 총 1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73세라는 나이에도 그룹 경영을 실질적으로 좌지우지하고 있는 허 회장이 직접 고개를 숙인 건 SPC 입장에서 최대한의 성의를 보인 것이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과연 이번 사과를 고인의 가족과 국민이 진정성 있게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허 회장은 5분 남짓의 1000자 분량 사과문을 낭독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은 채 서둘러 현장을 빠져나갔다. 회사 측이 사전에 “질의응답은 받지 않겠다”고 예고한 대로였다.

SPC는 “고용노동부와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댔다.

SPC의 주장마따나 이번 사태에 대한 엄정한 평가는 고용부와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오고 난 뒤에 해도 늦지 않는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SPC의 위기 대응 방식은 실패 교과서에 실려도 할 말이 없을 정도”란 게 이번 사태를 지켜본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20대 초반의 젊은이가 꽃다운 생명을 잃은 데 대한 공분이 커지는 와중에도 SPC 측은 그간 “사고 경위가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시간만 보냈다. 이는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2018년 ‘사과의 심리학’이라는 기사에서 제시한 △실제로 피해가 있었다는 즉각적인 인정 △사건에 대한 개인(대표 등)의 책임 인정 같은 위기관리 기본 원칙에서 한참 벗어난 대응이다.

지난달 26일 벌어진 대전 현대프리미엄아울렛 화재 사건에 대한 현대백화점의 대응과도 극명하게 대비된다. 사건 당일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은 현장으로 달려가 오후 4시 마이크를 잡고 유족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사고 수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직을 걸고 오너에게 할 말은 할 수 있는 회사 분위기, 아랫사람의 직언을 경청하는 오너의 열린 자세 유무가 두 기업의 상반된 대응 방식을 낳았을 것이라는 게 산업계 시각이다.

전문가들은 “SPC의 이번 위기 대응 방식은 기업들이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수연 서강대 커뮤니케이션대학 교수는 “기업의 위기 대응 과정에서 최종 결정권자는 오너”라며 “6일 만에 대국민 사과에 나서는 등 늑장 대응한 것은 대중 감정에 대한 공감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