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겁 많은 영국인들, 사놓고 못쓸까봐 '기차표 보험'도 든다

입력 2022-10-21 17:26
수정 2022-10-22 00:53
우중충하고 습한 날씨, 뻣뻣하고 유머감각이라곤 없는 사람들. 영국에 대한 흔한 고정관념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영국 사람들은 쾌활하고 유머를 좋아한다. 비즈니스 자리에서조차 명함을 쉽게 건네지 않을 정도로 신상을 밝히기를 꺼리는 습성 탓에 오히려 첫 만남에서 상대방을 판단하는 기준이 ‘유머’가 됐기 때문이다.

영국인들의 유머감각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사례는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이다. 개막식 영상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제임스 본드 역의 대니얼 크레이그와 함께 헬리콥터에 탄다. 헬리콥터가 런던탑을 지나 올림픽경기장에 도착한 그 순간, 모두의 예상을 깨고 분홍 드레스를 입은 여왕이 상공에서 갑작스레 뛰어내린다. 존 베리의 ‘007’ 테마곡이 울려퍼지면서 여왕은 낙하산을 펼친 채 유유히 내려온다. 헬리콥터에서 뛰어내린 건 실제 여왕이 아니라 대역이었지만, ‘올림픽 개막식은 진지하고 엄숙해야 한다’는 편견을 깬 이 영상에 관객들은 함께 웃고 손뼉을 쳤다.

<핫하고 힙한 영국>은 이렇게 영국과 영국인이 지닌 매력을 샅샅이 파헤친다. 저자는 1982년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영국에 건너간 뒤 수십 년간 현지에서 산 권석하 칼럼니스트다. 그는 ‘영국인보다 영국을 더 잘 아는 사람’으로 불린다. 영국인도 따기 힘들다는 국가 공인 가이드 ‘블루 배지’도 땄다.

수십 년간 영국에서 살아온 저자는 ‘신사의 나라’라는 별칭 뒤에 숨겨진 영국인들의 진짜 모습을 소개한다.

그는 영국인이 “보기보다 겁이 많고 수줍다”고 말한다. 영국인 중에는 자동차나 보일러 보증 수리 기간을 원래보다 한참 더 연장해놓거나, 기차표를 사놓고 쓰지 못할 상황에 대비해 보험을 드는 사람도 많다. 영국에서 보험산업이 발달한 배경이다. 토론을 좋아하는 것도 영국인들의 특징이다.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토론 교육을 받는 덕분에 격렬한 논쟁을 할 때도 화내지 않고 능글능글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저자는 영국에 오래 거주한 사람이 아니면 알기 힘든 전통이나 관습도 소개한다. 결혼식 때 신부가 오래된 것, 새로운 것, 누군가에게 빌린 것, 푸른색을 띤 것 등 네 가지를 몸에 지녀야 한다는 전통은 아직까지 내려져 오는 영국만의 ‘불문율’이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