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金첨지도 단골…100년전 등장한 '24시간 설렁탕집'

입력 2022-10-21 17:27
수정 2022-10-22 00:55

“영채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구멍이 숭숭한 떡 두 조각 사이에 엷은 날고기가 끼인 것이다. 영채는 무엇이냐고 묻기도 어려워서 가만히 앉았다.”

1917년 이광수가 쓴 한국 최초의 근대소설인 ‘무정’에서 주인공 영채는 평양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음식 하나를 건네받는다. 소설은 영채가 느낀 음식의 맛을 이렇게 표현한다. “별로 맛은 없으나 그 새에 낀 짭짭한 고기 맛이 관계치 않고 전체가 특별한 맛은 없으면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운치 있는 맛이 있다 하였다.”

그 음식은 바로 샌드위치다. 당시엔 ‘싼드윗치’라고 적었다. 100여 년 전 한국엔 샌드위치가 ‘에키벤’이란 이름으로 팔렸다. 에키벤은 일본말로, 기차역에서 파는 도시락을 뜻한다. 샌드위치뿐이 아니다. 나라의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던 조선이 망하고 반강제적으로 문호를 개방하면서 외국 문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식민지의 식탁>은 이렇게 식민지 시대의 우리 음식 문화를 살펴본다. 저자는 박현수 성균관대 학부대학 대우교수. 국문학을 공부하고 한국 근대소설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답게 소설을 통해 당시 식문화를 소개한다. 왜 식민지 시대일까. 저자는 “우리의 현대적인 식문화가 본격적으로 탄생한 시기이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일제 강점기란 치욕의 역사 탓에 진지한 연구가 미진했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24시간 설렁탕집’은 당시에도 있었다. 현진건의 1924년 소설 ‘운수 좋은 날’이 이를 말해준다. 인력꾼 김 첨지는 저녁 무렵 일을 마치고 우연히 만난 치삼이와 선술집에 간다. 늦게까지 선술집에 머물던 김 첨지가 어떻게 설렁탕을 사 갈 수 있었을까. 저자는 “설렁탕집이 새벽에도 문을 열었다”며 “문을 닫지 않고 24시간 영업하는 설렁탕집 역시 드물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흥미로운 대목은 1910년대 소설에는 설렁탕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실제로 설렁탕이 대중화된 것은 그 이후의 일이었다. 1920년까지 경성 내외에 설렁탕집은 25곳에 불과했다. 1924년이 되자 100군데가 넘었다. 장국밥을 밀어내고 순식간에 대표 국밥 음식이 됐다. 맛있으면서도 저렴한 덕분이었다.

지금도 일본 편의점에 가면 볼 수 있는 음료 ‘칼피스’도 이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밀키스와 비슷한 음료다. 1934년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서 주인공 구보는 길에서 중학교 동창을 만나 경성역 티룸에 동행한다. 동창은 ‘가루삐스’를 주문하며 구보에게도 권하지만, 구보는 황급히 고개를 흔든다. 소설은 “음료 칼피스를, 구보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외설한 색채를 갖는다. 또, 그 맛은 결코 그의 미각에 맞지 않는다”고 서술한다. 저자는 이를 칼피스 광고 카피였던 ‘첫사랑의 맛’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해석한다.

책을 읽고 나면 한국 근대소설들이 새롭게 보인다. 김유정의 1936년 소설 ‘동백꽃’에서 점순이는 구운 감자 3개를 내밀며 “느 집에는 이거 없지?”라고 말한다. 감자는 재배가 쉬워 전국적으로 생산량이 급증하던 때였다. 이 감자마저 없는 주인공 ‘나’의 집안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소설 속에서 인물들은 살아 숨 쉬며 음식을 조리해 먹고 카페에 가서 술을 마신다. 당시의 삶이 생생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저자는 “식민지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음식과 밀려나야 했던 음식을 해명하는 데 소설만큼 흥미로운 자료도 없다”고 말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