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15개 넘는 아르헨티나 환율

입력 2022-10-19 17:37
수정 2022-10-20 00:34
아르헨티나에서 사용되는 달러 환율은 대체 몇 가지일까. 지난 8월 대두(콩) 수출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대두 달러’에 이어 최근 해외 가수의 초청공연에 사용되는 ‘문화 달러’(일명 ‘콜드플레이 달러’), 월 300달러 이상 카드 해외 사용 때 적용되는 ‘관광 달러’(‘카타르 달러’), 사치품 구매용 ‘럭셔리 달러’ 등 세 가지가 추가됐다.

‘콜드플레이’는 유명한 영국 밴드로 이달부터 10차례 아르헨티나 공연이 예정돼 있다. 매진된 티켓 55만 장과 출연료 등 송금에 특별세 30%를 매기는 것이다. ‘카타르 달러’는 내달 카타르 월드컵 관람차 출국하는 4만3000여 명 등 관광객에게 부과하는 특별환율이다.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의 마지막 월드컵인 데다 자국 우승을 염원하는 팬들로서는 속이 터질 노릇이다.

아르헨티나의 특별환율 종류는 줄잡아 15~17개. 모두가 달러 부족을 해결하려고 만든 고육책이다. 현재 공식 환율은 1달러에 151페소지만 암시장의 대표 환율인 ‘블루환율’은 달러당 280페소에 형성돼 있다. 지난달 물가가 전년 대비 83%나 폭등했고, 기준금리는 연 75%까지 치솟았다. 곳곳에서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다.

이 나라의 환율 통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 신문은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소설 제목을 패러디한 칼럼 ‘100년 동안의 고전’에서 1930년대 대공황부터 시작된 환율 흑역사를 재조명했다. 2차 세계대전 전 영국과 가까웠던 아르헨티나는 미국이 기축통화국이 되자 달러 부족에 시달렸고, ‘퍼주기’로 재정 위기까지 겹쳐 지금까지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0년간 겪은 국가 부도만 8차례였다. 올해도 달러가 바닥을 드러내며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20세기 초에는 손꼽히는 부국이었다. 남미 최초로 지하철을 건설한 ‘황금의 땅’이자 4500만 인구보다 소가 더 많은 축산 대국이었다.

‘엄마 찾아 삼만리’에서 이탈리아 소년이 돈 벌러 떠난 엄마를 찾아간 ‘기회의 땅’도 이 나라였다. 그런데 이렇게 ‘달러 찾아 삼만리’에 온 나라가 휘청이고 있다. 국민들은 아직도 에바 페론의 포퓰리즘에 취해 있고, 자력으로 갱생할 산업조차 없으니 안쓰럽기 짝이 없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