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콘운송차주들의 운송거부에 따라 중단됐던 서울 4대문내 건설 공사 현장이 건설사들의 운송비 인상 수용으로 일부 정상화됐다. 이달초부터 시작된 레미콘운송차주들의 운송거부로 막대한 피해를 본 레미콘업계는 '공정거래위원회 제소(신고)'라는 맞불카드를 꺼내들었다.건설사들 '백기투항', 현대건설 호반건설 등 추가지급키로 건자재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과 호반건설 등 일부 대형건설사들이 레미콘운송차주의 추가 운송비 요구를 수용하면서 중단됐던 공사 현장이 18일부터 재개됐다. 현대건설 힐스테이트남산, 아페르한강, KT광화문 사옥을 비롯해 호반건설의 용산5구역 등 공사 현장이 다시 정상화된 것이다. 건설업계는 골조공사의 핵심인 레미콘이 납품되지 않아 발생하는 지체상금이 하루 수십억원에 달하기 때문에 일단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추가 논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최근 삼표 성수동 레미콘공장이 철거되면서 사실상 도심내 레미콘 공급기지가 사라짐에 따라 거리가 먼 경기지역에서 레미콘을 운송해야하는 레미콘 운송차주들은 건설사에 웃돈(추가 비용 보전)을 요구해왔다. 출근길 교통체증과 서울시의 통행시간 제한 등으로 시내 진입이 어려워 운송횟수가 줄고 생계가 곤란해졌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이달들어 집단 운송거부에 돌입해 서울지역 종로구, 중구, 용산구 등 도심권 일부 건설현장 가동이 중단됐다. 유진기업, 삼표, 아주산업 등 수도권 대형 레미콘업체들은 매출이 막혀 큰 피해를 입었다. 한 대형레미콘업체 관계자는 "그동안 서울4대문내 운송시 추가 운송비를 운송차주들에게 지급해왔는데 이번에 건설사가 또 지급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운송차주 계약과 거래의 자유 제한...사업자로 판단해 처벌한 판례 많아" 건설업계가 레미콘운송차주의 집단 행동에 굴복하는 모양새를 보이자 레미콘업계는 이 같은 사태가 재발되는 것을 막기위해 공정위 제소를 진행하고 있다. 한 레미콘업계 관계자는 지난 12일 전국레미콘운송총연합회(한국노총 레미콘운송노동조합)를 부당 공동행위로 공정위에 신고했다. 업계 관계자는 “운송차량은 유일한 레미콘 물류 수단으로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차주들이 운송을 거부하면 운반비가 인상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집단운송거부 과정에서 공정거래법 26조를 어긴 정황들이 많아 공정위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공정거래법 26조에 따르면 사업자단체는 가격의 결정이나 변경, 거래 조건을 정하거나 제한하는 등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가 금지돼 있다. 레미콘업계는 그동안 레미콘 운송차주들의 잦은 운송거부에 백기투항해 최근 2년에 걸쳐 운송비를 24.5% 인상해준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운반비 인상을 관철시키기위해 단체로 차량 운행을 통제하거나 납품 현장을 점거해 고객사(건설사)를 압박하는 등 사례가 많이 접수됐다”며 “회사측과 운송차주간 개별 계약에 단체가 개입해 시장 질서를 어지럽혔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전운련 관계자는 “운송차주는 대부분 계약직으로 회사측과 협상할 힘이 없어 단체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며 “전운련은 노동조합법상 노조로 볼 여지가 많고 사업자가 아니기 때문에 공정거래법을 어긴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선 레미콘업계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부당 공동행위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공정거래사건 전문가인 백광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울산 항운노조 사건의 경우 법원이 사업자단체로 보고 처벌한 판례가 계속 나오고 있다”라며 “운송차주들은 계약과 거래 조건을 각기 다르게 선택할 자유가 있는데, 어떤 단체가 이를 강제할 경우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레미콘업계측은 또한 지난 7월 운송차주단체와 협상을 통해 "추가협상은 없다"고 합의한 내용을 이들이 먼저 깨뜨렸다고 지적했다. 레미콘업계 관계자는 "추가 운송비 요구는 명백한 계약위반이며, 상호신의와 성실에 의해 맺어진 계약을 파기하는 행위"라며 "레미콘 업체들은 운송사업자들의 부당한 계약파기와 집단행동에 공정위 제소를 통해 바로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