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도어스테핑 발언 주워담기 [여기는 대통령실]

입력 2022-10-18 11:13
수정 2022-10-19 11:23

“윤석열 대통령은 독과점으로 인해 시장이 왜곡되면 국가가 당연히 대응을 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말씀을 하신 것이다. 구체적인 사안을 언급한 게 아니다”

지난 17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당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의 출근길 발언에 대해 해명을 하느라 ‘진땀’을 뺐다. 당일 아침 윤 대통령이 “국민의 이익을 위해 당연히 제도적으로 국가가 필요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한 게 화근이 됐다. 윤 대통령은 “그런 문제는 공정위에서 지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도 부연했다.

이런 윤 대통령의 발언은 “정부가 독과점 규제를 강화하기 위한 제도 개편에 착수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날 윤 대통령이 주재한 수석비서관급 회의 후에 나온 대통령실의 메시지는 ‘사뭇’ 달랐다. 카카오의 서비스 장애 사태를 계기로 대통령실이 주도하는 범정부 사이버안보 태스크포스(TF)를 출범한다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TF 멤버엔 공정위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출입기자들의 질문이 공정위가 검토 중인 제도 개편안에 집중됐던 이유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독과점 규제와 관련해선 법과 제도를 고치는 방안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이런 해명에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이날 저녁 김은혜 홍보수석 명의로 서면 브리핑 자료까지 내놨다. 이 브리핑 자료에도 독과점 규제 강화와 관련된 제도 개편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런 참모들의 노력에도 18일 거의 모든 언론들은 윤 대통령의 발언을 앞세워 “정부가 카카오의 독과점 체제를 대대적으로 수술한다”고 대문짝만하게 보도했다. 공정위가 추진하고 있는 제도 개선 사항들이 예시로 포함됐다. 카카오, 쿠팡과 같은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가 자사 제품을 우대하거나 끼워팔기를 요구하는 등 불공정거래행위를 막는 내용 등이 핵심이다. 이런 제도 개선안들은 이번 사태의 원인과 크게 관련이 없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민간 데이터센터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 체계화하는 일이다. 공정위가 아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 소관 업무다. 이런 문제점에 대해서도 김은혜 수석은 서면 브리핑에서 “시스템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번 만들면 고치기가 어려운 경직된 법률 규제보다 민간의 자율적인 책임을 강조하는 데 방점을 둔 것이다.


최근 들어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은 간결하고 정제된 메시지를 내고 있다. 내부에선 이기정 홍보기획비서관과 한오섭 국정상황실장의 협력 체제가 자리를 잡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유독 경제 관련 사안에 대해선 대통령의 발언을 참모들이 주워담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주엔 윤 대통령이 도어스테핑에서 한국은행 금리 인상에 따른 서민들의 채무 부담과 관련해 “조만간 금융당국 발표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관련 부처들은 “당장 발표할 새로운 대책은 없는데…”라며 난색을 표했다.

대통령실 안팎에선 윤 대통령이 도어스테핑에서 세세한 경제 수치를 늘어놓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지난 주 도어스테핑에선 “우리 기준금리가 0.5bp(1bp=0.01%포인트) 상향조정됐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50bp를 잘못 얘기한 것이다. 지난 8월 도어스테핑에선 “미국 금리인상으로 달러화가 2.9% 강세장이 됐고, 원화와 유로화가 2.8%, 파운드화가 3.1%, 엔화가 2.7%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발언들은 윤 대통령이 경제 관련 사안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고, 우선적으로 챙긴다는 사실을 알리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복잡한 경제 사안을 짧은 시간 설명하는 일은 전문가들에게도 쉽지 않다. 탄력적으로 대응해야 할 경제 관련 사안을 대통령이 세세하게 언급하기 시작하면 참모들의 행동반경은 크게 좁아진다. 대통령은 유능한 참모를 곁에 두고 커다른 정책 방향이나 원칙만 제시해도 된다. 내부에선 도어스테핑을 준비하는 참모들 사이에 경제 전문가가 없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윤 대통령 본인이 발언을 줄여야 한다는 세평에도 귀를 귀울일 법하다. 윤 대통령을 접한 지인들이 대통령을 일컫는 별명이 ‘57분’이라고 한다.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면 다른 사람들이 발언할 시간은 60분 중 고작 3분 뿐이라는 얘기다.

내일 도어스테핑에선 오늘보다 나아진 대통령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