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미국은 중국만 노리는 게 아니다

입력 2022-10-17 17:53
수정 2022-10-18 01:19
미국 상무부는 지난 7일 중국에 대한 반도체 장비 수출 제한 조치를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중국 기업에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판매하는 것을 금지했다. 중국에 있는 외국 기업에 장비를 반입할 때는 개별 심사하기로 했다. 인공지능(AI)과 슈퍼컴퓨터에 사용되는 반도체 칩을 중국에 수출하는 것도 규제했다. 5일 뒤 희소식이 나왔다. 중국에 생산 공장을 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를 1년 유예받았다. 한국, 반사이익 얻을까앞으로 1년간 두 기업의 중국 공장은 미국 정부 허가 없이 반도체 장비를 공급받게 됐다. 여기저기서 “전기자동차 보조금에 비해 반도체는 선방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배터리 보조금 대상을 북미산으로 한정하고 유예기간도 받지 못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보다 나은 건 사실이다. 대규모 투자 뒤에 배신당했다는 ‘뒤통수 맞은’ 느낌도 받지 않았다. 게다가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 때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비판도 없다.

일각에선 미국의 화웨이 제재 때처럼 한국 기업이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미국의 규제로 YTMC(양쯔메모리) 같은 중국 반도체 회사의 성장을 막을 수 있어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양강 체제가 더욱 굳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대부분 전문가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우선 규제 대상 때문이다. 당초 미국 정부는 메모리 반도체는 수출 제한 품목에 넣지 않으려 했다. 중국 기업이 상대적으로 강한 파운드리와 반도체 설계(팹리스)를 중점적으로 규제하려고 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시스템 반도체인 로직 칩뿐 아니라 18나노미터(㎚·1㎚=10억분의 1m) 이하 D램과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도 대중 수출 제한 대상에 들어갔다.

1년이란 기간도 문제다. 1년 뒤 유예 조치가 연장되지 않으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정부에 각종 사업계획을 일일이 보고해야 한다. 미국 정부가 작정하고 최신 장비 수출을 막으면 중국 내 공장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실제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미국의 압박으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중국에 반입하는 것을 보류했다.

국내 반도체업계가 가장 크게 걱정하는 것은 따로 있다. 미국 업체의 성장이다. 미국 정부의 반도체 규제는 1차적으로 중국 견제를 겨냥하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목적은 미국 반도체산업 육성이다. 미국 내 안정적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결국 한국과 대만에 빼앗긴 반도체산업 주도권을 되찾으려는 게 궁극적 목표다. 中 아니라 美와 경쟁미국 의회와 정부가 합심해 반도체 지원법을 제정한 것도 같은 이유다. 때마침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역대급 투자 계획을 내놓고 있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3위인 마이크론은 지난달 뉴욕에 1000억달러(약 143조원)를 들여 첨단 메모리 메가팹을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인텔은 지난해 파운드리 사업 재개를 선언한 뒤 애리조나에 공장 두 곳을 착공한 데 이어 지난달 오하이오주에 200억달러를 투자해 파운드리 공장 건설에 들어갔다. “진짜 경쟁자는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한국 반도체 업계 관계자의 우려가 기우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