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은 중국공산당 입장에서 공과가 뚜렷한 인물이다. 중국의 공산혁명을 이끌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웠지만 그의 집권기에 중국민들이 겪은 고통은 막심했다. 1958년 급격한 공업화를 추진한 대약진운동은 농촌경제를 파탄시켜 수천만 명을 굶어 죽게 했다. 이 때문에 정치적 위기에 몰리자 1966년부터 10년 넘게 벌인 문화대혁명은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한 방편으로 악용돼 수많은 사람이 잔혹하게 희생됐다. 1949년부터 1976년까지 그의 철권통치 아래 70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마오의 뒤를 이어 실권을 장악한 덩샤오핑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것이 좋은 고양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 생활 수준 회복이 급선무였기에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했다. 개혁·개방으로 사회주의에 시장경제를 접목한 결과 중국 경제는 급성장했다. 하지만 빈부격차가 극심해졌고, 부정부패와 사회 부조리도 만연했다.
2013년 국가주석이 된 시진핑은 “폐쇄되고 경직된 과거의 길도, 기치를 바꾸는 나쁜 길도 가지 않는다”고 천명했다. 혁명만 추구하다 국민의 삶을 도탄에 빠뜨린 마오의 길도, 시장경제에 치중해 부작용을 낳은 덩의 길도 옳지 않다는 것. 시 주석은 실용적인 경제발전을 추구하면서도 마오식 대중주의와 사회주의 체제의 본질을 강화하려고 했다. 청나라 말기 유교문화를 바탕으로 하되 서양의 과학·기술을 도입해 부국강병을 꾀했던 중체서용(中體西用)에 빗대 ‘등체모용(鄧體毛用)’이라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지난 16일 개막한 제20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와 함께 장기집권의 서막을 연 시 주석이 ‘중국특색 사회주의’와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 건설’을 기치로 내걸었다. 등체모용이든, 중국식 사회주의든 1인 철권통치를 노리는 시 주석은 아무래도 마오 방식에 더 무게를 두는 듯한 느낌이다. 역사적으로 절대권력자의 우선순위는 국익이나 민생이 아니라 권력 유지와 확대였다. 대만 흡수통일 천명도 본인의 권력 기반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해석된다. 권력만 생각하는 독재자들이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는 러시아 푸틴이 잘 보여주고 있다.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