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러미 헌트 영국 신임 재무장관이 17일(현지시간) 재정 적자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증세 및 정부 지출 삭감 계획을 발표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내세운 경제정책이 사실상 철회됐다는 분석이다.
제러미 헌트 영국 신임 재무부 장관은 이날 오전 11시 30분 “어떤 정부도 시장을 통제할 수 없지만, 정부는 공공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확신을 줄 수 있다”고 밝히며 예정일보다 2주 앞당겨 예산안 일부를 발표했다.
헌트 장관은 내년 4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던 소득세 기본세율을 20%에서 19%로 인하하는 방침을 경제 여건이 허락할 때까지 무기한 보류하는 등 트러스의 감세안을 대부분 철회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배당세와 관광 부가가치세 인하도 보류된다. 한국의 주택 취득세에 해당하는 인지세 주택 가격 기준을 25만파운드(약 4억원)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은 유지된다.
발표에 앞서 헌트 장관은 이번 발표를 앞두고 전날(16일) 앤드루 베일리 영국 중앙은행(BOE) 총재와 만나 정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은행의 통화 긴축과 정부의 감세정책이 엇박자를 보였다는 지적이 나와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사전 논의를 가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채권관리청(DMO) 국장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영국 재무부는 이날 발표된 재정 계획을 다음 달 23일에 공개하려 했다. 하지만 오는 31일로 한차례 앞당겼고, 여기에 한 차례 더 2주 앞당겨 이날 발표했다. 영국 재무부는 이날 오전 6시에 재정계획 발표를 예고하기도 했다. 가디언은 이를 두고 '매우 이례적'이라고 보도했다.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영국 정부는 감세안을 철회하겠다고 선언한 이후에도 파운드화와 국채 가격이 급락하는 등 영국 금융시장 혼란이 지속되자 트러스 총리와 헌트 장관이 이를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지난달 23일 트러스 총리와 쿼지 콰텡 전 재무장관은 450억파운드(약 72조5200억원)의 대규모 감세안을 담은 ‘미니 예산안’을 내놓으면서 시장을 혼란을 증폭했다. 금리 인상 중인 영국중앙은행(BOE)의 긴축 기조와 상충했기 때문이다.
또 영국 재무부는 지난달 430억파운드(약 68조원) 규모의 감세안을 담은 미니 예산을 공개하면서 재정 전망을 제시하지 않았다. 영국 정부가 예산을 발표하면서 재정 전망을 하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이후 시장은 크게 혼란을 겪었다.
영국 파운드화 가치가 1.03달러까지 떨어지고 영국 국채 금리가 연 5%를 웃도는 등 시장 불안이 커졌다. 트러스 총리는 결국 부자 감세안을 철회한 데 이어 지난 14일 콰텡 장관을 해임하고 후임으로 헌트 장관을 임명했다. 그러면서 추가 감세안 철회 방침을 밝혔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발표를 두고 “현대 영국 정치에서 전례 없는 유턴(U-turn)”이라면서 “트러스의 ‘미니 예산안’은 너덜너덜해졌다”고 평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