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가 초강세를 이어가며 선진국 통화 가치가 맥을 못 추는 가운데 멕시코, 브라질 등 개발도상국 통화는 예상 외로 선전하고 있다. 이들 개발도상국 중앙은행이 미국 중앙은행(Fed)보다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린 데다 원자재 가격이 상승한 덕까지 본 결과다.
블룸버그는 “달러 강세에도 개도국 통화 가치의 하락폭은 선진국 통화에 비해 작았다”고 17일 보도했다. Fed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달러 강세로 기초체력이 약한 개도국 통화 가치가 추락할 것이라는 우려와는 정반대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개도국 23곳 중 21개국의 달러 대비 통화 가치 하락폭은 영국 파운드화보다 작았다. 개도국 19곳의 통화 가치 낙폭은 유로화보다 소폭이었다. 23개국 통화 모두 일본 엔화보다 낙폭이 크지 않았다.
개도국이 ‘의외로’ 환율 방어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조기에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한 데 있다는 분석이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지난해 3월부터 올 8월까지 12회 연속해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Fed 보다 발빠르게 기준금리를 인상, 자본 유출을 줄여 통화 가치 하락도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평가다. 현재 브라질의 기준금리는 연 13.75%로 미국 기준금리 상단(3.25%)보다 4배 이상 높다. 린징렁 컬럼비아스레드니들인베스트먼트 애널리스트는 “일부 개도국 중앙은행들은 지난해 중반부터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한 보상을 지금 받고 있다”고 했다. ‘자원 부국’인 개도국의 경우 원자재 가격이 지난 6월까지 고공행진하면서 무역수지가 개선, 통화 가치를 떠받치는 데 도움을 받았다.
반면 일본은 통화 완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어 엔화 가치 하락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유로존의 유로화는 우크라이나 전쟁, 에너지 대란 등의 여파에 노출됐다. 영국 파운드화는 정부가 지난달 감세정책을 발표한 뒤 금융시장이 휘청이면서 가치가 떨어졌다. 선진국 통화로 분류되는 엔화와 유로화, 파운드화의 가치 하락세가 개도국 통화보다 심각한 이유다. 알빈 탄 RBC캐피털마켓 아시아통화전략실장은 “유럽의 거시적 문제와 일본의 정책 차이가 곧 해소될 것 같지는 않다”면서 “이들 국가의 통화 약세도 빠른 시일 내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가나, 파키스탄과 같은 나라는 달러 강세 후폭풍을 고스란히 맞고 있다. 수입업자들이 달러를 구입하지 못해 대금을 치르지 못하면서, 항구에는 세관을 통과하지 못한 컨테이너가 쌓여가고 있다. 식량 수입이 전면 중단돼 식량대란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는 “이들 국가는 자국 통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풀면서 달러 보유량이 급감했다”면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높아진 식량 가격이 달러 강세 때문에 더욱 상승할 수 있다”고 전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