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물가 정책을 결정하고, 각종 연금 지급액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 소비자물가지수의 시계열이 단절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에서 소득주도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가계동향조사 방식을 두 번이나 개편하면서 시계열 단절 문제가 불거졌는데, 통계청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지수는 가계동향조사 소비지출 조사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시계열 끊어진 가계동향조사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이 16일 통계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통계청은 지난해 1월 '가계동향조사(소비지출) 시계열 연계 연구' 용역사업을 발주했지만 여전히 2016년 이전과 2019년 이후 통계치를 직접 비교할 수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통계청은 연구 용역 결과에 대해 "표본체계의 변경으로 직접 금액을 비교할 수는 없고, 예측값을 이용해 증감률 비교 분석이 가능하다"고 표현했다.
통계청은 2017년부터 가계동향조사를 소득조사와 지출조사로 분리하는 개편을 실시했다. 분기별 소득 통계를 발표해 '소득주도성장'의 성과를 빨리 확인하고자 하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2019년 다시 소득과 지출을 통합하는 개편을 실시했다. 2018년 소득 5분위 배율 격차가 벌어지는 등 소득주도성장의 목표와 반대되는 결과가 나오자 조사 방식을 입맛대로 바꾸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가계동향조사 방식이 두 차례나 바뀌면서 연도별 비교 분석도 어려워졌다. 표본 체계 및 조사 방식이 바뀌면서 △2016년 이전 △2017~2018년 △2019년 이후 가계동향조사 데이터들간의 비교가 어려워지는 시계열 단절이 발생한 것이다. 강신욱 당시 통계청장은 "통합조사에 대한 시계열은 2019년 이후부터 흐름을 비교할 수 있다"며 가계동향조사 시계열 단절을 선언했다. ◆소비자물가지수까지 왜곡 가능성이후 통계청이 용역 사업까지 발주했지만 시계열 단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소비자물가지수에도 불똥이 튀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가계동향조사 소비지출액을 기반으로 조사 품목을 결정하고, 전체 소비지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토대로 해당 품목의 가중치를 계산한다. 통계청이 제출한 '소비자물가지수 산정시 반영한 소비지출액 현황' 자료를 보면 2015년, 2017년, 2020년 소비지출액은 시계열이 단절된 가계동향조사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가계동향조사의 시계열이 단절되면, 소비자물가지수의 시계열도 단절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게 송 의원 설명이다. 하지만 통계청은 자체 '정기통계품질진단 결과보고서'에서 "소비자물가지수는 시계열 단절이 발생하지 않은 점을 감안할 때 일관성이 있고 우수하다"고 진단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정부가 경기를 판단하고 물가 정책을 수립하는 기초자료가 된다. 국민연금, 기초연금, 최저생계비 등 각종 지급액을 조정하는 지표로도 활용된다. 현행법상 소비자물가지수에 기초해 각종 인상률 및 보조금을 산정하는 법률이 국민연금법 기초연금법 고등교육법 유아교육법 등 18개에 달한다. ◆물가지수 연동 법안만 18개 송 의원은 "소득주도성장의 실패를 감추기 위해 가계동향조사 방식을 바꾸면서 소비자물가지수에서도 시계열 단절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철저한 조사를 통해 통계청이 이를 알고도 은폐한 것인지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통계청은 "소비자물가지수 시계열 단절시 정책적·사회적 혼란이 예상된다"면서도 "관련 통계의 시계열 단절은 없다"고 해명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소비자물가지수를 주기적으로 개편하는 취지는 최근의 소비 패턴 변화를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시계열 단절 여부와 관계 없이) 가장 최근에 발표된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가져와 그 변화를 파악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고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