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주한미군의 정규 군사훈련을 핑계로 심야에 연쇄 도발에 나섰다. 전투기,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방사포(다연장로켓) 등을 동원했다. 특히 동·서해안 양측에서 쏜 방사포는 2018년 이뤄진 ‘9·19 군사합의’를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다. 북한이 7차 핵실험에 앞서 한반도 긴장을 끌어올리려는 의도로 도발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동·서해에 170여 발 포격
14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의 연쇄 도발엔 가장 먼저 전투기가 동원됐다. 지난 13일 밤부터 이날 새벽에 걸쳐 10여 대가 출격했다.
북한 전투기들은 동·서부 내륙과 서해 상공 등 세 방향에서 우리 군이 설정한 ‘전술조치선’을 넘어 9·19 군사합의에 따른 ‘비행금지구역’ 북방 5~7㎞ 지점까지 내려온 것으로 파악됐다. 전투기가 비행금지구역 가까이 접근하자 우리 공군의 F-35A 등이 긴급 출격해 대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술조치선 아래로 북한 군용기가 내려온 것은 2012년 10월 이후 10년 만이다. 전술조치선은 북한 군용기의 남하에 신속 대응하기 위해 우리 군이 군사분계선(MDL)과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20~50㎞ 북쪽 상공에 설정한 가상의 선이다.
북한은 또 이날 오전 1시20~25분 서해안에서 방사포를 포함해 130여 발, 오전 2시57분~3시7분에는 동해안에서 40여 발의 포사격을 했다. 포 탄착 지점은 9·19 합의에 따른 동·서해 해상완충구역이었다. 해상완충구역은 남북이 우발적 충돌이나 긴장 고조 상황 등을 방지하기 위해 해안 포문을 폐쇄하고, 해상 군사훈련과 해안포 등 중화기 사격 행위를 금지하기로 한 곳이다.
우리 군은 이날 오전 1시49분께 평양 순안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SRBM 한 발이 발사된 것도 포착했다. 비행거리 700여㎞, 고도 50여㎞, 속도 약 마하 6(음속 6배)로 탐지됐다. 사거리 등 제원으로 추정할 때 ‘북한판 이스칸데르’인 KN-23 미사일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北 “남조선군이 10여 시간 포사격”북한은 이번 심야 도발이 ‘우리 군의 포사격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이날 오전 2시19분께 발표에서 “전선 적정(적의 정보)에 의하면 13일 아군 제5군단 전방지역에서 남조선군은 무려 10여 시간에 걸쳐 포사격을 감행했다”고 규탄했다. 이어 “우리는 남조선 군부가 전선지역에서 감행한 도발적 행동을 중시하면서 강력한 대응 군사행동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합참은 “주한미군의 정상적인 군사훈련이었다”고 반박했다. 북한이 문제 삼은 ‘포사격’은 13일 오전 8시~오후 6시께 강원 철원 사격장에서 주한미군이 실시한 다연장로켓(MLRS) 연습탄 사격인 것으로 전해졌다. 군 관계자는 “9·19 합의에 따라 MDL 5㎞ 내에선 포격을 못 한다”며 “그 이남 지역에서 남쪽 방향을 향해 사격했다”고 설명했다. 미군은 올해 초에도 경기 동두천에서 MLRS 훈련을 한 기록이 있는 만큼, 최근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 대응해 시행한 훈련도 아니라는 설명이다. ○합참 ‘군사합의 위반’ 엄중 경고북의 한밤 도발에 정부는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안보실 관계자는 “(상임위원들은) 정례적으로 해온 사격 훈련을 빌미로 9·19 군사합의를 위반하고 군사적 긴장을 고조하고 있는 것을 강력히 규탄했다”고 밝혔다. 합참은 ‘대북 경고 성명’을 냈다. 합참은 “우리 군은 북한이 9·19 군사합의를 위반하고, 지속적인 도발을 통해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을 초래하고 있는 데 대해 엄중하게 경고한다”며 “이를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국방부는 군 통신선으로 9·19 군사합의 위반을 지적하는 대북전통문을 발송했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북한은) 한·미가 어지간한 군사 도발에는 반응하지 않자 강력한 도발을 통해 향후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 한다”며 “당분간 더 다양한 방식의 군사 도발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동현/좌동욱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