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기원' 암흑물질 찾으러…지하 989m 뚫어 연구실 열었다

입력 2022-10-14 17:14
수정 2022-10-21 18:58

암흑물질. 우주의 약 26%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미지의 물질이다. 지표면에서는 암흑물질 연구가 어렵다. 지구로 쏟아져 내려오는 우주방사선이 연구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이 강원도의 철광산 지하를 파고 들어간 이유다. 김영덕 IBS 지하실험연구단장은 “우주방사선의 영향이 100만분의 1로 줄어드는 지하에서 암흑물질의 존재를 규명한다면 한국 첫 노벨상 수상도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고 했다.

지난 5일 준공한 강원 정선 IBS 지하실험연구단 ‘예미랩’. 국내 유일 철광채굴기업 SM한덕철광산업 사업장 부지 한쪽에 있는 엘리베이터의 육중한 철문이 닫혔다. 초속 4m의 빠른 속도로 약 2분30초간 수직으로 떨어졌다. 기압 차이로 먹먹해진 귀를 부여잡고 내리자 대형 덤프트럭이 다니는 거대한 진입터널이 나왔다. 소형 전기차로 갈아타고 이번엔 터널을 따라 5분여간 더 들어갔다.

터널 끝 연구동에서 안내를 맡은 이재승 IBS 연구위원은 “이곳이 갱도의 막다른 곳을 뜻하는 ‘막장’”이라며 “IBS를 비롯한 주요 연구기관은 14개 실험실을 갖추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예미랩은 고심도 지하 실험시설이다. 예미산 지명을 따 명명됐다. 2017년 8월부터 309억원을 들여 지어졌다. 예미산 정상으로부터 깊이는 989m, 지하 실험동 면적은 14개 동 3000㎡에 달한다. 미국과 중국, 캐나다, 이탈리아, 일본 등에 이은 세계 여섯 번째 규모다. 총연구인력은 70여 명이다.

예미랩의 핵심 연구시설은 대용량 액체섬광물질 검출기(LSC) 연구동과 이중베타붕괴(AMoRE) 연구동이다. LSC는 암흑물질을 검출할 수 있는 다목적 검출기다. 직경 20m, 높이 28m의 거대한 공동에 최대 2500t의 초순수(수소와 산소 외 아무것도 없는 물) 등을 채울 수 있는 대형 물탱크와 입자가속기를 두고 암흑물질 등을 찾아낸다.

AMoRE는 우주의 탄생인 빅뱅 이후 우주에 퍼져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중성미자의 존재를 증명하는 연구시설이다. 외부 중성미자의 영향을 막기 위해 대형 컨테이너를 70㎝ 두께 고밀도폴리에틸렌(HDPE)으로 두르고, 다시 감마선을 막기 위해 25㎝ 두께 납으로 둘러막았다.

관측 설비의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 반도체 공장 수준의 청정도를 유지하는 클린룸 설비를 갖췄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매사추세츠공대(MIT) 등의 공동연구 제안도 들어오고 있다.

김 단장은 “예미랩에서 우주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정선=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