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돈 버는 사람은 수출업자와 환테크 투자자뿐이야. ‘기러기 아빠’와 수입업자는 죽을 노릇이지.” 날로 치솟는 원·달러 환율 때문에 온갖 희비가 교차하고 있다. 다른 선진국들이 환율과 물가를 걱정하는 정도라면 우리는 심각한 가계부채까지 고민해야 하는 ‘트릴레마(삼중 딜레마)’에 빠졌다.
스리랑카 같은 나라는 이미 부도났고, 사정이 나은 유럽 국가들도 ‘킹달러 펀치’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파이낸셜타임스가 미국 중앙은행을 “금리 인상 액셀러레이터로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을 수출하는 ‘고통 전달자(vector of pain)’”라고 비판하며 ‘글로벌 밉상’이라는 말까지 썼을까. 월스트리트저널도 “한 세대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강달러가 미국을 제외한 세계 경제에 최대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반대로 ‘킹달러’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달러 가치가 주요국 통화가치 대비 20%가량 급등한 덕분에 ‘큰손’으로 급부상한 미국인들이다. 유로화 가치 하락으로 유럽행 관광이 크게 늘어난 지난 7~9월 미국인들은 루이비통 등 LVMH의 각종 명품을 작년보다 36%나 많이 사들였다. 1인당 2억원이 넘는 초호화 전세기 투어에도 미국인들이 몰리고 있다.
내달 한 달간 한국 베트남 터키 브라질 등 4개국을 돌아보는 16만5000달러(약 2억3500만원)짜리 럭셔리 여행 상품에 벌써 46명이 신청했다. 오는 26일부터 서울 국립중앙박물관과 리움미술관, 경주 불국사 등을 돌아보는 5박7일짜리 여행 상품도 항공권 외 가격이 1인당 9599달러(약 1370만원)에 이른다.
물론 미국에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해외 관광으로 신나는 한편에서는 수출 경쟁력 약화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유명 가전업체 월풀의 2분기 해외 매출이 전년보다 19% 줄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양날의 검’이다.
지구촌 곳곳을 울리고 웃기는 ‘킹달러’의 명암은 ‘무엇을 아무리 얇게 베어내도/ 거기에는 늘 양면이 있다’는 오마르 워싱턴의 시구를 떠올리게 한다. ‘삶은 무슨 사건이 일어나는가가 아니라/ 그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는 명구도 함께 새겨보게 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