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벤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신흥국의 외환위기와 유럽 에너지위기 가능성을 경고했다. 미국 경기 연착륙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버냉키 전 의장은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브루킹스연구소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신흥시장은 달러 초강세와 대규모 자본 유출에 직면해 있다”며 “어떤 재정적 조건이 악화되면 문제가 추가되고 강화될 수 있어 정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유럽 규제당국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 공급이 중단됨으로써 많은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경기의 경착륙도 우려했다. 그는 “Fed는 유능하고 최선을 다할 것으로 믿지만 미국 경기 연착륙은 매우 힘든 도전”이라며 “무척 어려운 상황이어서 나는 어떻게 될지 답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면 인플레이션은 완화되고 경제도 제자리를 찾는다”며 “그때는 지금보다 낮은 금리를 다시 보게 되겠지만 팬데믹(대유행) 이전 수준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버냉키 전 의장은 ‘인플레이션 시대에 맞게 Fed의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연 2%에서 더 올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엔 “2%가 중기 목표인 만큼 매번 충족시킬 필요는 없다”며 “목표치를 바꾸면 Fed의 신뢰도에 좋지 않을 것”이라고 반대의 뜻을 밝혔다. 그는 Fed의 2% 물가목표제를 도입했다.
그는 “내 인생의 교훈 중 하나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이라며 기자회견 내내 신중함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상황을 주시해야 한다”거나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등의 말을 반복했다. 버냉키 전 의장은 여러 위험 요소를 살피려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금융 여건을 악화시킬 수 있어 우리가 정말 주목해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현 상황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슷하다는 주장은 수용하지 않았다. 2008년 위기의 원인은 부실대출이라는 금융 시스템 내부의 문제이지만, 현재 경제위기는 코로나19 사태라는 외부 요인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2008년에는 리먼브러더스라는 대형 은행이 무너졌지만, 올해엔 아직 그런 일이 없다는 점도 언급했다.
버냉키 전 의장은 1983년 논문을 통해 1930년대 대공황 당시 은행의 대규모 인출 행렬이 경제 전체의 파탄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통계적으로 분석했다. 그는 “(이 논문은) 1983년 당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주장은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금융 안정이 최우선이라는 그의 소신은 이후 역사상 첫 양적완화 정책으로 실행됐다. 버냉키 전 의장은 2006년부터 2014년까지 Fed 의장을 지내면서 양적완화로 글로벌 금융위기 수습을 이끌었다. 이 때문에 그에게는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그는 수상 소식이 발표되기 전날 밤 휴대폰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에 시카고에 거주하는 딸이 집으로 전화를 걸어 노벨상 수상 소식을 알려줬다고 전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