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글로벌 복합위기 키우는 '4대 화약고'

입력 2022-10-10 17:24
수정 2022-10-11 00:20
악화일로의 대내외 환경에 마주친 한국 경제는 사면초가다. 대외건전성의 핵심 지표이자 경제위기와 상관관계가 높은 경상수지가 지난 8월 30억달러 적자를 기록하며 경상·재정수지의 쌍둥이 적자가 현실로 다가왔다. ‘반도체 한파’로 국내 증시 대장주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0% 격감하며 3년 만에 역성장을 기록했고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반도체 기술과 장비의 대중(對中) 수출 차단에 나서며 관련 업계에 불똥이 튈 우려가 커졌다. ‘킹달러’로부터 원화 가치 방어를 위해 외환보유액은 9월 200억달러가량 급감해 빨간불이 들어온 상황이다.

이번주 국제 금융시장 이목은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에 쏠리고 있다. 최대 관심사인 향후 경제 전망은 더욱 어두워져 내년도 세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하향 조정이 예상되고 글로벌 경기침체 확률과 불확실성은 높아지고 있다. 더군다나 당면한 복합위기 극복에 걸림돌이 될 지뢰밭이 사방에 널렸다.

위기 경고음을 높이는 첫 번째 화약고는 글로벌 지정학적 리스크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상황 반전으로 수세에 몰린 블라디미르 푸틴의 핵 도발 위협은 1962년 10월 소련의 핵탄도미사일 배치 시도로 촉발된 쿠바 사태 이후 가장 심각한 핵 위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의 ‘아마겟돈’(인류 최후 대전쟁) 경고 발언처럼 기존 국제질서를 뒤흔드는 게임체인저 가능성이 크다. 이미 에너지 위기로 최악의 겨울을 예고하는 유럽은 더 어려워지고 OPEC+의 대규모 원유 감산 계획으로 스태그플레이션 경고음도 커지고 있다. 최근 잦아진 북한 도발은 한반도 정세 불안을 부추긴다.

두 번째 화약고는 중국 경제의 역주행이다. 올해 중국 성장률(세계은행 기준)은 2.8%에 그쳐 1990년 후 처음으로 아시아 개발도상국 평균에도 못 미친다. 이달 16일 확정될 시진핑 3연임 장기 집권 체제는 미·중 패권 경쟁 격화와 대만해협 갈등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중국몽을 앞세운 일대일로 사업은 신흥국 부채의 덫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국내 부동산시장 위축으로 대출 상환을 거부하는 차입자 반발 확산 등 사회 불안도 심상치 않다. 지난 3분기 MSCI중국주가지수는 23% 추락해 같은 기간 10% 상승한 인도와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한국 수출의 25%를 점하는 중국의 구조적 경기 하강은 우리 수출 기업에 직격탄이고 무역수지 적자의 비상벨이다.

세 번째로, 금융 시스템 불안은 위기 확산의 치명적 화약고다. 일본과 중국은 대규모 외환보유액 투입에도 환율 방어가 버거운 상황으로 아시아 외환위기 재연 위험까지 언급되는 판국이다. 가장 심각한 시스템 위험은 주택시장 거품 붕괴에서 비롯할 개연성이 크다. 미국 30년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7%에 근접하며 글로벌 금융위기 후 최고 수준으로 올랐고 중국 포함 주요국의 동시다발적 부동산 침체가 금융권 부실로 번질 수 있다. 다음번 금융위기는 상대적으로 건전한 은행권보다 부채비율이 높은 사모펀드 등 비은행권 부실에서 촉발하리라는 파이낸셜타임스(FT) 분석도 주목할 만하다.

열악한 국내 정치 환경도 위기 악화의 기폭제다. 위기 극복에 필수적인 국정 동력의 약화와 인기영합적 정책은 경제 펀더멘털을 취약하게 만든다. 1990년대 멕시코 페소화 위기는 정치 혼란이 부른 비극이었고 반복적 재정위기로 지난 30년간 성장 정체를 경험한 이탈리아는 정국 불안과 포퓰리즘 정책의 폐해를 보여준다. 최근 영국 정부 정책은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를 키워 파운드화와 국채 가격이 폭락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재정 실탄을 아껴야 할 현시점에 기초연금을 40만원으로 올려 전 국민에게 살포한다는 정치권 움직임은 가당치 않다. 돈 풀기식 인기영합적 정책은 투자자 신뢰를 떨어뜨리고 외화 자금 이탈을 부추길 수 있다.

과거 위기와 달리 지금은 변동성이 큰 장기침체 국면으로 경제적 고통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단기 대책을 넘어 핵심 개혁과제 추진을 통해 경제 체질을 개선하고 체력을 키워야 한다. 글로벌 패러다임 변화와 산업 대전환 시대의 경쟁력 강화가 절실한 오늘날, 정치권은 비생산적 정쟁을 접고 경제주체 모두 경각심을 높여 국가 미래 성장 전략에 힘을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