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배터리 장비업체 10여 곳 등과 협업을 늘릴 계획입니다. 소재는 포스코케미칼, LG화학, 에코프로비엠 등으로부터 공급받기 위해 협상 중입니다.”
유럽 기업들이 출자한 배터리 합작법인 ACC(오토모티브셀컴퍼니)의 얀 뱅상 최고경영자(CEO·사진)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뱅상 CEO는 지난달 20일부터 23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해 한국의 배터리 업체들과 만나 장비 및 소재를 공급받기로 했다. 국내 언론과는 첫 인터뷰다.
ACC는 유럽 완성차업체 메르세데스벤츠와 스텔란티스, 프랑스 화학기업 토탈의 배터리 자회사 사프트가 2020년 각각 지분 33.3%를 투자해 만든 ‘배터리 연합군’이다.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기업에 미래 산업인 배터리의 주도권을 뺏겨선 안 된다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출범했다. 프랑스 8억4600만유로(약 1조1700억원), 독일 4억3700만유로(6000억원) 등 각 국 정부가 지원금을 보탰고, 이탈리아 정부도 지원 규모를 협의 중이다. “유럽 각 국 정부가 막대한 지원금을 바탕으로 배터리 산업을 자체 육성하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ACC는 내년 말부터 연 8GWh 규모의 프랑스 배터리 공장에서 양산을 시작한다. ACC는 하이니켈 배터리인 NCM811(니켈 코발트 망간)을 각형으로 생산할 계획이다. 삼성SDI가 생산하는 배터리와 비슷한 형태다. 이후엔 연 15GWh까지 규모를 늘린다. 독일, 이탈리아에도 공장을 세워 2030년엔 연 120GWh를 생산하겠다는 목표다. 기존 배터리 업체들보다 양산 규모는 작지만, 주요 기업들이 합작한 기업이라는 점에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ACC는 차세대 배터리 기술 연구도 진행 중이다. 2025년엔 배터리 셀의 니켈 비중을 90%까지 올릴 계획이다. 2027년엔 전고체 배터리를 생산하기 위한 연구도 하고 있다. 배터리 생산비용을 낮출 수 있는 미래 기술인 건식 전극공정도 준비 중이다. 건식공정은 차세대 기술 중에서도 난이도가 높은 편에 속한다. 뱅상 CEO는 “구체적인 도입 시기를 언급할 순 없지만 테스트 결과는 희망적”이라고 말을 아꼈다.
그는 한국에서 배터리 소재 및 장비업체 10여 곳과 회동하는 등 강도 높은 일정을 소화했다. 뱅상 CEO는 “포스코케미칼, 에코프로비엠, LG화학 등을 만나 배터리 소재 공급을 논의했다”며 “장비 업체 중에서는 피엔티, 티에스아이에 납품을 요청했고 엠오티, 엠플러스, 하나기술과도 협업할 계획”이라고 했다. 지금은 중국 장비업체 비중이 높은데, 지정학적 리스크 등을 분산하기 위해 한국 업체와 협력을 늘리는 것이다. 벨기에 유미코어에서도 소재를 공급받을 계획이다.
제조 노하우가 부족한 배터리 업체들을 괴롭히는 수율(완성품 중 양품 비율) 저하 문제에 대해서는 “벤츠, 사프트의 품질 담당자들이 ACC에서 근무하고 있어 품질 문제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는 “프랑스는 청정 에너지인 원전 비중이 커서 비용 측면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에선 에너지 가격 급등하고 있는데, 프랑스에선 저렴한 전기료로 생산 비용을 낮출 것이라는 설명이다.
ACC에는 700여 명이 근무 중이며, 연구개발(R&D)과 양산개발 분야 직원이 이 중 400명이다. 한국인 직원은 8명 가량이다. 뱅상 CEO는 “유럽에서는 배터리 전문가를 더 찾기 어려워 한국의 배터리 인재를 더 많이 채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형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