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인가, 금융 플랫폼인가.' 지난해 8월 카카오뱅크 상장 당시 증권시장에선 카카오뱅크의 기업 정체성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한쪽에선 카카오뱅크가 국내 최초로 대환대출 플랫폼으로 성장해 '금융계의 아마존'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놨다. 일부 증권사의 목표주가는 8만원을 넘어섰다. 상장 초기 주가수익비율(PER)은 115배에 달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카카오뱅크도 결국 정부의 규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은행일 수 밖에 없다고 일축했다. 상장 1년 2개월여 후 시장은 '카카오뱅크는 플랫폼이 아닌 은행'이라고 결론 내렸다. 주가는 고점 대비 80.56% 급락했다.
카카오뱅크와 카카오게임즈, 카카오페이 등 코로나19 시기 '대표 성장주'로 개인 투자자들에게 크게 각광받았던 카카오그룹주가 몰락하고 있다. 7일 나란히 52주 신저가를 다시 썼다. 상장 당시 투자자들이 기대했던 성장성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면서다. 글로벌 중앙은행이 강도높은 긴축 기조를 유지하면서 이들 기업의 밸류에이션에도 독(毒)이 되고 있는데다 최근 손자회사인 라이온하트 재상장까지 나서면서 카카오그룹주를 향한 투자심리는 빠르게 얼어붙고 있는 모양새다. ◆고점 대비 83% 하락한 카카오페이·뱅크이날 카카오페이는 14.41% 급락한 4만1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11월 고점 대비 83.86% 떨어졌다.
미 중앙은행(Fed)이 고강도 긴축 기조를 유지하면서 미래 가치를 주가에 선반영하는 성장주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데다 기업의 미래 성장성까지 불투명해진 영향이다.
최근 미 투자은행(IB)인 시티증권이 '현실을 직시할 때'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카카오페이에 대한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매도'로 하향 조정했다. 목표주가는 현 주가보다도 낮은 3만8000원으로 제시했다.
시티증권은 "소비자들은 최근 경기 침체로 인해 소비를 줄이고 있는데다 사용자 트래픽이 매출로 전환되는 속도도 느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내년엔 네이버가 신용대출 비교 서비스를 출시하고, 애플페이까지 한국에 진출하면서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라는 점도 언급했다. 시티증권은 "올 3분기 손익분기점에 도달해 내년 영업이익률 6.8%를 달성할 것이라는 시장의 전망은 현실적이지 않다"며 "내년 말까지 분기별 영업손실이 지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카카오페이 자회사 카카오페이증권의 유상증자에 참여한다는 소식도 주가에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날 카카오뱅크도 9.38% 하락한 1만8350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8월 고점 대비 80.56% 급락했다.
이날 DB금융투자는 전날 종가(2만250원)보다 20% 낮은 목표주가(1만6200원)을 제시했다. 올해 대출 증가액이 예상치(4조원)보다 못미칠 것으로 전망되면서다. DB금융투자는 올해 대출 증가액이 2조3000억원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병건 DB금융투자 연구원은 "부동산 시장 침체로 전세 대출이 급격히 둔화되고 금리 인상으로 신용 대출도 역성장하면서 카카오뱅크의 대출 증가세가 급격히 둔화됐다"고 지적했다. ◆또 '쪼개기 상장' 나선 카카오이날 카카오게임즈도 5.15% 하락한 3만96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카카오게임즈의 게임 제작 자회사인 라이온하트스튜디오의 상장이 임박하면서 급락세를 보였다. 한국거래소 상장공시위원회는 지난 29일 라이온하트에 대한 신규상장 예비 심사를 진행하고 상장 적격으로 결론 내렸다.
그러나 카카오게임즈 주주들은 "라이온하트 상장은 이중상장"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카카오게임즈 실적은 라이온하트가 제작한 게임 '오딘'에 크게 기대고 있다. 이베스트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 2분기 기준 오딘에서 발생한 매출(1646억원)은 전체 매출(3388억원)의 48.5%에 달한다. 게임 퍼블리싱 회사인 카카오게임즈가 보유한 게임 지적재산권(IP)은 오딘 한 개 뿐이다.
오딘을 크게 흥행시킨 라이온하트는 희망 공모가액으로 3만6000~5만3000원을 제시했다. 이대로라면 라이온하트의 시가총액은 3조565억~4조4998억원에 달하게 된다. 약 3조3000억원 수준인 모회사 카카오게임즈의 시가총액을 뛰어넘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라이온하트 상장으로 카카오게임즈의 기업 가치가 크게 희석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미 카카오 계열 그룹사에서 쪼개져서 상장된 카카오게임즈와 뱅크, 페이 등이 고점 대비 65~80%가량 하락한 상황에서 또다시 손자회사 상장이 이뤄지면서 비난 여론은 거세지고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카카오가 쪼개기 상장했던 카카오페이와 게임즈, 뱅크 모두 주가가 고점 대비 50~70% 급락한 가운데 손자회사인 라이온하트까지 상장에 나서면서 카카오그룹주 전반이 최악의 투자심리를 맞닥뜨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진한 실적도 주가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카카오게임즈의 3분기 영업이익이 전분기 대비 30.7% 급감한 561억원에 그칠 것으로 추정했다. 안재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논란이 됐던 우마무스메의 운영 미숙으로 구글 앱스토어 매출 순위가 크게 하락해 지난달 28일에는 55위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우마무스메 게임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한국 서버가 일본 서버보다 중요 이벤트를 훨씬 늦게 공지하는 등 소통이 부실하고, 각종 카드와 재화 지급도 부족해 한국 게이머를 차별하고 있다는 논란이 일었다. 성종화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카카오게임즈의 주가수익비율(PER)은 21.4배로 국내 주요 게임주 평균 대비 여전히 높아 밸류에이션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