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내가 업무에 대해 조언해줘야 할 것 같은데, 저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은데 괜히 나섰다가 ‘꼰대’ 소리 들을까봐 그냥 넘어가게 됩니다.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어요”
Z세대, 혹은 밀레니얼 세대 등에 대한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하거나 강연을 하다보면 가끔 듣게 되는 ‘기성세대’의 하소연이다. 물론 필자도 40대 중반의 조직 내 허리이자 기성세대로서 질문자가 어떤 기분인지, 무엇을 걱정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4~5년 전, 한국 사회는 ‘안티 꼰대 열풍’에 휩싸였다. 젊은이들 앞에서 ‘나 때는 말이야~’라고 일장 연설을 시작하는 꼰대를 일명 ‘라떼’라고 부르는 말도 이때 생겨났다. 당시 ‘3년 정도 경력이 쌓여 이제 일 좀 시킬 만하니 바로 퇴사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한국 기업의 최대 고민이었고, 이들 세대가 많이 꼽은 퇴사 이유 중 하나가 ‘기성 조직의 답답한 꼰대문화’였다. 자연스레 곳곳에서 ‘꼰대질’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고, 기성세대 중 다수는 ‘혹시 내가 꼰대가 아닐까’ 고민도 많이 했다.
덕분에 오래된 기성 조직 문화에 대한 변화도 시작됐고, ‘직장 내 갑질’에 대한 처벌도 가능해졌지만 부작용도 생겼다. 분명 조직을 위해서 필요한 조언이나 충고임에도, 때론 업무를 위해 필요한 질타인데도 후배들이나 젊은 직원들에게 ‘꼰대’로 낙인찍힐까봐 굳이 나서서 말을 하지 않는 ‘회피형 비꼰대’가 많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꼰대론’ 열풍 속에서 다양한 업무 경험을 통해 쌓은 노하우, 이른바 ‘암묵지’를 조직 내 후배들에게 전달하려하는 ‘현자(賢者)’와 자기 이익만 챙기고 자기 자랑만 하는 ‘꼰대’ 사이의 명확한 구분 노력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탓이다. 오죽하면 ‘젊은 직원들은 자기한테 좋은 말 해주면 멘토, 듣기 싫은 소리하면 꼰대라 한다’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물론 조직의 꼰대 문화는 21세기형, 선진국형 기업 문화가 아니며 그 자체로 조직을 좀먹는다. 그렇다고 해서 조직 내 선후배 사이의 진심어린 조언과 충고, 질타가 사라지면 그것도 문제가 된다. 다소 성가시게 잔소리를 하는 직장 상사라도 막말을 하지 않으면서 ‘조직을 우선시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건 꼰대가 아니다. 다만 말로는 조직을 우선시 한다면서도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잔소리’와 ‘오지랖’으로 무장했다면 그야말로 꼰대다. 그리고 여기에 언어폭력 수준의 ‘막말’까지 한다면 이는 조직을 좀먹고 여러 사람을 병들게 하는 이른바 ‘썩은 사과’다.
후배 직원들은 내 상사, 내 선배가 위 셋 중 어떤 유형인지를 명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고, 선배나 관리자, 리더들은 내가 혹시나 두 번째나 세 번째 유형으로 분류될 행동을 하지 않았는지 반성하면 된다.
리더십 전문가들의 정의에 따르면, ‘꼰대란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을 근거 없이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이다. 이를 뒤집으면 (업무상 필요에 따라) 자신의 생각을 근거를 갖고 설득하면 그건 꼰대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그렇게 이제 ‘현자’와 ‘꼰대’를 구분할 때가 됐다. ‘꼰대론’에 대한 집착으로 조직 내 현자들을 꼰대로 몰아세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른바 ‘MZ세대’가 조직을 떠나는 것도 문제지만, 조직 내에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현명한 리더들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조직에는 큰 손실이기 때문이다.
‘혹시나 내가 꼰대로 낙인찍히는 것 아닐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사실 제대로 된 젊은 직원들, 후배들이라면 내가 조직을 위해 진심으로 이야기 하는지, 그저 내 기분에 따라, 내 이익을 위해 뭔가를 강요하고 있는지 다 아는 법이다. 결정적으로 ‘혹시나’ 하고 걱정하는 사람은 이미 자기 반성이 되는 사람이다. 꼰대가 될 리 없다.
그래도 걱정된다면, 리더십 전문가인 정동일 연세대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제가 조직문화나 리더십 강의할 때 마다 ‘꼰대 자가진단 테스트 9문항’을 줍니다. ‘적게 듣고 많이 이야기 한다’, ‘같은 말을 두 번 이상 반복 한다’ 같은 문항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어느 조직에서 강의를 해도 항상 똑같은 건, 이 자가진단 테스트에서 단 한 문항도 자신은 포함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 사람이 가장 문제적 인간이라는 겁니다.”
고승연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